등록 : 2007.03.21 18:39
수정 : 2007.03.21 19:23
사설
제프리 존스 전 주한 미상공회의소 회장이 며칠 전 서울고법 아카데미 초청 강연에서 “한국 법원은 매우 인간적”이라며, 우리 법원이 경제범죄를 저지른 기업인들에게 지나치게 온정적인 판결을 해 온 것을 비판했다. 자신을 외국 기업인이라고 가정하고 에둘러 얘기했지만, 그런 판결이 법치주의를 해치고 있다고 지적한 게 강연의 핵심이었다. ‘놀면서 돈버는 법’이란 주제로 강연을 한 자리에서 그가 굳이 그런 얘기를 꺼낸 것을 판사들은 민망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가 보기로 든 내용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바다. 미국 법원은 분식회계를 한 ‘엔론’의 최고경영자에게 징역 24년을 선고해, 거의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가혹한 처벌을 했다. 이에 반해 우리 법원은 수천억원의 분식회계를 한 기업인에게 고작 몇 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심지어는 형 집행을 유예하기 일쑤다. 실형을 선고해 놓고 이런저런 이유로 곧 풀어주기도 했다.
법원이 기업인들한테 가벼운 처벌을 하면서 흔히 쓰는 표현이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고, 가혹하게 처벌할 경우 경제에 끼칠 악영향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공은 인정한다 해도, 법대로 처벌하는 것이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말은 이제 더는 쓰지 말아야 한다. 경제질서를 흔든 범죄에 가벼운 처벌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경제인들로 하여금 그런 범죄 유혹에 쉽게 넘어가도록 조장한 것 아닌가. 정치인들도 툭하면 사면을 남발해 이를 거들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어느 나라든 경제성장이 빠르게 이뤄지는 단계에서는 경제범죄가 많다. 그러나 법의 빈틈을 없애고 법질서를 어지럽힌 경제범죄자를 엄벌한 나라들만이 그 다음 단계의 성장을 이뤄냈다는 게 경제사의 교훈이다. 각종 불법행위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이들이야말로 “올바른 이들은 제대로 기업하기가 어려운 나라”를 만드는 주범인 까닭이다.
판사들은 재판을 하면서 지나치게 나라 경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니, 경제까지 지나치게 고려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이다. 존스는 “법치주의 실현을 위해 여러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며, “여러분에 의해 법치주의가 실현된다면 5년 후 주가지수는 두 배로 오를 것”이란 말로 강연을 끝냈다. 판사는 그저 법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하기만 하면 그것이 나라 경제에 더 도움을 주는 것이란 지적으로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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