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22 19:02
수정 : 2007.03.22 19:02
사설
한-미 자유무역협정 수석대표 간 고위급 협상이 미국에서 마무리됐다. 다음주 통상장관급 회담을 거쳐 오는 30일이면 협상이 타결될 수도 있는 막바지 국면이다.
고위급 회담 결과는 한마디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 비율) 확대를 노렸던 우리 쪽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개성공단 제품 국내산 인정 여부는 원천적으로 배제됐다. 특허권 문제도 미국 요구대로 사실상 특허기간을 연장해 줬다. 농산물에선 애초 협상 대상도 아니었던 미국산 쇠고기 위생기준 문제를 가지고 얼마나 양보할 것이냐를 논의 중이다. 우리가 얻어낸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세가지 원칙을 밝혔다. △경제적 실익 위주로 따져 이익이 안 되면 체결 안 한다 △합의가 어려우면 낮은 수준의 협정 체결도 가능하다 △미국 의회의 협상 시한에 얽매이지 말라.
반드시 지켜야 할 협상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실리를 따져보자. 고위급 협상 이전부터 우리는 많은 양보를 해왔다. 미국이 요구하는 4대 선결조건을 들어줬고, 그토록 강조하던 무역구제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다음주 통상장관 회담도 기대할 것은 별로 없다. 섬유는 중국산이 한국산으로 둔갑할 것이란 이유로 미국이 원산지 규정을 완화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자동차 관세 철폐 역시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빈사 상태에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양보를 얻어내기 힘든 상황이다.
그제 열린 미국 하원 청문회는 미국 쪽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자리였다. 미국 의원들과 관련 업계 대표들은 쌀, 자동차, 쇠고기 등 분야에서 미국 요구를 반드시 관철시키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얻은 것이 거의 없는 우리 쪽에서는 벌써부터 ‘30일 협정 타결’이란 얘기가 흘러나온다. 노 대통령이 밝힌 원칙은 단지 국민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였단 말인가.
실무적인 협상은 할 만큼 했다. 이제 이 문제를 통상교섭본부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검증에 들어가야 한다. 노 대통령이 얘기한 세가지 원칙으로 돌아가자. 경제적 실익이 최우선이다. 그게 안 되면 장기 협상으로 가든지, 수용 가능한 낮은 수준에서 끝내야 한다. 협상 자체에 매몰돼 실익도 없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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