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27 19:00
수정 : 2007.03.27 19:00
사설
정부가 지난해 여름 내놓은 공공 부문 비정규직 축소 대책이 현장에서는 정반대 효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상시업무를 맡는 비정규직들을 사실상의 정규직(무기한 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오는 5월까지 대상자를 확정할 예정이다. 이렇게 대상자 선정을 앞둔 상황인데, 현장에서는 비정규직을 잇달아 해고하고 있다. 연초 일부 정부기관에서 비정규직을 용역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이더니 요즘은 각급 학교의 비정규직 감축이 두드러진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건, 현장에서 정부의 정책 의지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책은 내놨으나, 구체적인 예산 확충 지침 따위의 후속 조처가 없는 상황이다. 자연히 현장에서는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하게 할 걸로 여기게 되고, 미리 비정규직을 줄이는 게 최선이라고 보는 것이다. 특히 학교로서는 학기 초에 인원을 확정할 수밖에 없는 사정까지 맞물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이 와중에 적어도 고용 불안 걱정은 없던 교무보조원 등 많은 학교 비정규직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심지어 한 초등학교에선 6명의 급식 조리원들에게 스스로 해고자 한 명을 정하라고 해, 당사자들이 제비뽑기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 쪽은 정규직 전환 대상자를 확정하기 전에는 예산을 배정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업무 처리 절차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미리 예상하지 못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동안 이어져온 정부의 비용 절감 압박과 비정규직 축소 방침 사이에서 공공 기관들이 이런 식으로 대처하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공공 비정규직의 70%가 상시 업무를 맡고 있는 상황이니, 해당 기관들로서는 대책 시행 이후 상시 인력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낄만 하다. 정부가 공공 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제대로 정착시키려면 당연히 처음부터 신경썼어야 하는 대목들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비정규직 고용안정은 예산 절감이나 조직 효율화 문제와 다른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비정규직 대책이 마무리될 5월까지는 기존 비정규직을 가급적 해고하지 않도록 지침을 내리고 감독하는 일도 필요하다. 어렵사리 마련한 비정규직 대책이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양새로 진행되지 않게 할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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