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01 17:41
수정 : 2007.04.01 19:28
사설
지난주말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 외무장관 회담은 두 나라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줬다. 오간 얘기는 많으나 합의된 건 적었고, 어려운 현안은 그대로 남았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 쪽은 기존 강경 기조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아소 다로 외상은 1993년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는 뜻에 변화가 없다고만 했을 뿐, 최근 정부 고위관리들의 잇따른 망언에 대해선 사과는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에이급(A급) 전범 합사에 일본 정부가 관여한 사실이 드러난 야스쿠니 신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신사 쪽의 판단’이라고 피해 갔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진 고교 교과서 검정을 두고서도 ‘국정 교과서가 아니어서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발뺌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 문제와 정치 문제를 섞으면 안 된다”고 강변했다. 한손으로는 과거 잘못을 왜곡·은폐하고 다른 손으로는 악수를 청하면서 두 손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우리 쪽은 한-중-일 세 나라 외무장관 회담을, 그리고 일본 쪽은 한-일 안보대화 재개와 외교부 북미국장 대화를 제안해 서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동북아 역학구도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한국은 동북아 핵심국의 공동 논의기구를 내실화하려는 데 비해 일본은 미-일 동맹에 한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동북아 공동체 구상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동북아 나라들 사이의 접촉이 균형있게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경제·사회적으로는 비교적 가깝고 과거사 인식과 외교·군사 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많은 한국인은 일본의 우경화가 진행될수록 한-일 사이에 갈등이 생길 소지가 커진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치세력의 과거사 왜곡·은폐는 이런 의심을 굳히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일본 스스로 바뀌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한-일 관계 발전에는 한계가 있음을 이번 회담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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