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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02 18:00 수정 : 2007.04.03 10:13

사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격렬한 찬반 논란 속에서 타결됐다. 이대로 국회에서 비준한다면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시장 개방이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타결안은 걱정했던 대로 얻은 것은 별로 없고 미국 요구가 대부분 관철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국익을 우선하겠다는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결안에 찬성할 수 없다. 특히 농업과 문화산업 등 경쟁력이 취약한 분야에서 대책 없이 일방적 양보로 일관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협상 결과 우리는 미국 자동차 관세 철폐를 앞당긴 것 외에 별다른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것도 우리 자동차 관세의 즉시 철폐와 특별소비세 인하, 배기량 기준 세제의 개편이란 미국 쪽 요구를 들어준 대가였다. 플라스틱·기계류 등 일반 공산품 관세철폐 효과는 서로 큰 이해득실이 없는 수준이다. 기대했던 미국 섬유시장 개방은 소폭에 그쳤다. 반덤핑관세 등 무역구제 절차 개선 분야에선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고, 미국 조달시장 접근은 주 정부가 제외됨으로써 실익을 기대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자유무역협정 체결이란 상징적 의미 외에 실질적 이득을 찾아보기 힘든 결과다.

협정 체결의 대가로 내준 것들은 너무 많다. 먼저 쌀을 제외한 거의 모든 농산물 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쇠고기·오렌지·돼지고기·닭고기 등 농산물 민감 품목들의 관세를 7~15년 사이에 대부분 없애기로 했다. 쇠고기 검역은 자유무역협상 대상이 아닌데도 뼛조각 허용까지 약속했다. 문화산업도 미국에 일방적으로 내준 대표적인 분야다. 국산영화 의무상영비율(스크린쿼터)을 73일에서 더 늘릴 수 없도록 했다. 영화·스포츠 등 케이블텔레비전의 유료방송 콘텐츠 시장을 사실상 완전 개방했다. 지적재산권 보호기간도 미국 요구대로 50년에서 70년으로 늘려줬다.

자동차 얻고 농업·제약 등 포기

그뿐 아니다. 특허기간 연장과 자료독점권 인정 등으로 복제약품을 주로 생산하는 국내 제약업체들이 설자리를 잃게 됐으며, 법률 서비스 시장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에서의 조세·부동산 예외 요구도 완전히 관철시키지 못했다. 자동차 등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대가로 농업·문화·금융·제약 등 경쟁력이 취약한 많은 분야가 손실을 감수하는 구도다. 농업은 장기적으로 포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든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10위의 경제대국으로 간다”, “선진국형 서비스에 도전해야 한다”, “물건을 파는 것보다 제도를 미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면서 했던 말들이다. 서비스와 제도를 개혁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 세계 10위권 이내의 경제대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취지다. 이번 협상 결과가 그런 도약의 계기가 될지 의문이다. 오히려 농업과 문화산업을 파탄으로 몰고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시장을 개방한다고 해서 저절로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뼈를 깎는 자체 노력과 정부의 꾸준하고 일관된 지원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하다. 농업만 해도 그렇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정부는 개방이 불가피한 대세라면서 경쟁력 강화를 외쳐 왔다. 그러나 농업의 경쟁력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10여년 뒤 사실상의 전면 개방이 이뤄질 때 남아 있을 농작물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회 양극화의 심화도 우려된다. 양쪽 합의안은 대기업 위주의 수출 산업은 좋아지는 반면, 제약 등 중소기업의 영역과 농업 등 저소득 계층이 속한 분야는 입지가 더 좁아지게 돼 있다. 몇몇 전략산업을 키우려고 다른 산업을 희생하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그런 식의 자유무역협정은 고용을 창출하기보다는 실업자만 양산할 뿐이다. 잘못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대안 없는 개방 기정사실화 말아야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지금 당장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야 하는지 국민들이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부터 국민적 이해와 동의 없이 협상을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협상의 원칙과 기준도 없었다.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협정이 체결되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결과였다. 구체적인 진행 과정을 보더라도 4대 선행조건을 미리 해결해 주고 협상을 시작했고, 협상 시한도 우리가 나서 미국 쪽 기준에 맞췄다. 미국은 처음부터 국내법을 한 자도 고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했지만 우리는 수십 가지의 법률을 고쳐야 할 판이다. 대등한 나라 사이 협상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다.

합의된 협정안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원칙의 부재, 일방적인 양보, 피해 산업에 대한 대안 결여 등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정부가 합의했다고 해서 협정 체결이 그대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냉정한 평가가 우선이다. 대책 없는 개방이거나 경제적 실익이 없는 협정이라면 미국과의 합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란 근거 없는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자. 이번 합의안은 국민 개개인에게는 오히려 우울한 잿빛에 가깝다.


[사설] 역사적 책임, 국회 어깨에 놓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마무리되고, 이제 공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로 넘어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법 질서와 경제 운용 정책,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중대한 사안이다. 양국 의회의 비준을 통과해 정식 발효되면 무려 백 가지가 넘는 국내법을 고쳐야 할 정도라고 한다. 국가 운영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셈이다. 그만큼 국회는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다루는 데서 역사적 책임의식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

그동안 협상 과정에서 우리 국회가 보여준 태도는 실망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 못해 ‘에프티에이특위’를 꾸렸지만, 구체적인 협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수동적이고 형식적인 활동에 그쳤다. 미국 의회가 행정부 협상단한테 협상 목표부터 전략, 세부 방침까지 일일이 지시하면서 통제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미국과 달리 통상 절차법이 마련돼 있지 못한 탓이라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적극적인 의지만 있었다면 국민을 대신해 얼마든지 정부를 견제할 수 있었다. 주요 정당 역시 협정 추진을 사실상 정부에 전적으로 일임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자기 임무를 방기하는 이런 태도는 용납하기 어렵다. 국회는 이번 자유무역협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구체적인 협상 내용과 추후 대책뿐 아니라 그동안 협상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미국 의원들이 정부 사이 협정문 내용까지 수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서 배움이 있기를 바란다. 내용을 면밀히 따져보고 국익에 도움보다는 손해가 많이 난다고 판단할 경우 비준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막연하게 개방이 대세라든가, 여기서 협정이 무산되면 대미 관계를 비롯해 많은 후유증이 걱정된다는 등 섣부른 주장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시간에 쫓길 것도 없다. 철저하게 검증하되 차기 국회로 넘길 수 있다는 각오로 비준 동의안을 검토해야 한다. 협정은 노무현 정권이나 17대 국회에 한정한 사안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비준 동의안 통과를 생각하는 이번 정기국회는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논리에 영향받을 우려가 높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국회의 맹성과 깨어있는 의식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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