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05 18:24
수정 : 2007.04.05 19:05
사설
한-미 자유무역협정 타결로 당장 벼랑 끝에 서게 된 사람들은 농민들이다. 우리는 제조업 분야에서 이득을 얻으려 농산물 분야에서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 장기적으로 관세가 계속 유지되는 품목은 쌀·콩·감자·분유·천연꿀 다섯 가지밖에 안 된다. 시간만 벌었을 뿐 한국 농업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정부의 기본 발상은 이런 것이다. 어차피 농업은 경쟁력이 없다. 그러니까 농업을 포기하고 다른 산업을 키워야 한다. 국가 정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한심한 수준이다. 그런 식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쌀도 포기해야 한다. 국내 쌀값은 국제 가격의 네 배를 넘는다. 국민 정서 때문에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제조업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섬유만 해도 아시아와 중남미 나라들보다 경쟁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산업이다. 굳이 살리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완전한 의미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가 실현된 곳은 없다. 경쟁력이 없다고 농업을 포기한 나라도 거의 없다. 일본, 프랑스 등 많은 선진국들은 오히려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지켜가고 있다. 우리 농업의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경쟁력이 강화되지 않는 것은 농업이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 아니다. 체질 개선보다는 소득 보전으로 때우려는 임시방편적인 처방, 가능성 없는 농업에 많은 투자를 할 필요 있느냐는 편의주의적이고 안이한 발상이 더 근본 원인이다.
정부는 2004년 우루과이라운드에 대비해 농업·농촌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대책 먼저, 개방 나중’ 원칙을 분명히 밝혔다. 자유무역협정(FTA), 도하개발의제(DDA) 협상 등에 대비해 대책을 먼저 수립한 뒤 개방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이번 합의는 기존의 농업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며, 농업에 대한 어떤 비전과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중 자유무역협정을 빨리 추진하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무책임하고 즉흥적인 발상이다. 중국에까지 시장을 열면 우리 농업은 결단 날 수밖에 없다.
제조업 수출을 늘리기 위해 농업을 포기하자는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의지만 있다면 우리 농업도 어느 정도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확충이 가능하다. 경제성장률 조금 높이자고 농업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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