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06 18:47
수정 : 2007.04.06 18:47
사설
“당에서 방송에 좀 관심을 가져주세요 … 방송이 아직도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우리가 정권을 찾아오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에다 새로 그려야 됩니다.” “우익 시민 단체들이 와서 ‘야, 이렇게 할래면 방송위원회 문 닫아라’ 하고 시위를 해줘야 됩니다.” 방송 장악을 꿈꾸는 정당 참모의 말이 아니다. 강동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해 11월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당시 모임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자, 강 위원은 어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출석해 발언 내용을 시인했다.
방송위원은 방송정책 담당 기관인 방송위원회의 핵심 인사다.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 공익성 실현이라는 임무를 책임지라고 대통령이 정치권 추천 등을 통해 임명하는 자리다. 방송위원의 중요성은 방송법 26조가 “위원은 임기 중 직무상 외부의 어떠한 지시나 간섭도 받지 아니한다”고 못박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이 특정 정당 의원을 만나, 대선전략과 방송 활용방안을 조언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강 위원은 30년 동안 〈한국방송〉에서 일한 방송인이다. 비록 한나라당 추천으로 방송위원이 됐지만, 언론인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방송을 선거전략 차원에서 이용하라고 조언할 수는 없다.
물론 언론인이라고 정치적 신념까지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다. “좌파들 몰아내지 않으면 우리가 못 살아요”라는 그의 신념을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는 이 나라의 방송정책을 좌우하는 방송위원이다. 그리고 방송인들이 방송을 정권의 시녀로 삼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워 온 역사를 모를 리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방송의 독립성은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헌신짝처럼 내던져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처신해야 한다.
그는 문제의 발언이 사적인 자리에서 한 것이고 방송위원으로서 공적 활동은 중립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방송위원에게 요구되는 첫번째 자질은 방송의 독립성·공공성이 필요한 이유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인식이 올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도 국민이 맡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강 위원 본인을 위해서나, 방송과 방송위원회를 위해서나, 방송위원을 그만두고 정치에 뛰어드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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