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09 17:57
수정 : 2007.04.09 19:06
사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가 도를 넘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추진한 협정인 만큼 이를 홍보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목표는 정책을 제대로 알려, 불필요한 갈등 비용을 치르지 말자는 것이다. 산업자원부가 지난 1일 국무위원 워크숍에서 발표한 ‘한-미 에프티에이 산업부문 홍보계획’은 홍보가 아니라, 군사정권 시절의 여론조작을 떠올리게 한다.
계획서를 보면, 협상 타결에 뒤이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 산자부 산하단체와 섬유산업연합회 등 업종단체, 공기업들이 잇달아 지지성명서를 발표하게 돼 있다. 13일까지 두 주 동안 단체 16곳이 내기로 돼 있는 지지성명 발표가 착착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16일 이후에도 열두 단체가 지지성명을 낸다. 문제는 그것이 자발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산자부는 ‘성명 발표를 유도한다’고 했다. 성명 요점까지 미리 다 정해놨다.
산자부는 또 자유무역협정 찬성단체를 중심으로 기업인 찬성 서명운동을 벌여 찬성 목소리를 부각시키고,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나 경제단체장 등을 동원해 지지하는 글을 신문 등에 싣도록 계획했다. 신문과 필자까지 정해둔 것으로 보아, 일부는 신문사 쪽과 협의까지 끝낸 것으로 판단된다. 이 모든 활동에 산자부 담당팀을 정해두어 관리까지 하고 있다. 이것이 정부가 주도하는 여론조작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홍보 계획이 협상 타결 이전에 다 마련돼 있었다는 것은 협상 결과가 어찌되든 무조건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이었던 듯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나라와 국민의 장래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협정이다. 최종적으로 협정에 서명하든 않든, 지금은 국민한테 협상 내용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홍보 계획은 장밋빛 전망으로 국민을 눈을 흐리게 하는 데만 목적을 두고 있다. 동원된 단체들 가운데선 협정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지지성명을 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흘러나온다. 이런 식이면 협상 결과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할 게 있는 단체들도 침묵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여론조작으로 한때 높은 지지를 얻었다고 해서 그 평가가 영원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협정에 따른 파장을 살펴 차분히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온힘을 써도 모자랄 판이다. 정부는 이성을 찾아야 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