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12 21:51
수정 : 2007.04.12 21:51
사설
서울고등법원이 그제 원청회사인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 폐업을 통해 하청업체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을 내쫓은 것은 부당 노동행위에 해당하고 “원청업체가 부당해고 구제명령의 이행 의무자로서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했다. 대구고법도 지난 5일 검찰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것이 형법상 공갈·협박죄에 해당하고 노조 전임비를 지급받은 것은 금품갈취”라며 대구경북 건설노조 간부들을 구속한 사건에서 “건설 일용 근로자들과 형식적인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원청업체들도 일용 근로자들과 사이에 실질적인 사용종속 관계를 맺고 있는 당사자”라며 사용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런 법원의 판결은 작업 전반을 지휘·감독하고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권한을 지닌 원청업체가 실제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는 노동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2003년 노조를 설립했다가 하청업체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고 하청 업체들은 자진 폐업했다. 그 뒤 새로 설립된 하청 업체들이 노조원을 뺀 노동자 대부분을 다시 고용해 같은 일을 계속했다. 이번 서울고법 판결은 당시 해고된 노조원들을 구제할 책임이 원청 회사인 현대중공업에 있다는 뜻이다.
기업이 노동비용을 절약하고 노무관리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간접고용’ 형태를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가 불이익을 받고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많아졌다. 해결을 요구하면 근로계약 당사자인 하청 업체의 사장은 “아무 힘이 없다”고 말하고 원청 회사는 “법적으로 아무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기 일쑤였다.
일찍이 국제노동기구(ILO), 국가인권위원회,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 근로자대책 특별위원회 등에서는 원청 회사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또 “실질적 권한 행사 여부로 노동법상 사용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번 판결들은 학계와 노동계의 오랜 합리적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으로서, 그동안 사실상 노동삼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요구에 원청회사가 응해야 하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원청회사한테 하청업체 노조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를 지우는 구체적인 법률적·제도적 근거를 하루속히 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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