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16 18:33
수정 : 2007.04.16 18:56
사설
서울중앙지법이 어제 ‘일심회’가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판결을 했다. 법원은 피고인들의 여러 혐의 내용을 따져 일부에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이적단체 구성 혐의에 대해선 “단체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일심회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6·15 공동선언 이후 최대 간첩사건’이라고 한 검찰이나, ‘386 간첩단 사건’으로 몰아붙인 일부 언론은 할말이 없게 됐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은 지난해 10월 느닷없이 불거질 때부터 실체보다 부풀려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확인되지도 않은 수사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가 하면, 교체를 앞둔 당시 국정원장은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선 매우 이례적으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형적인 간첩단 사건”이라고 앞질러 주장했다. 정치권을 겨냥한 추측 보도도 난무했다. 그 대부분은 법원 판결은 물론, 검찰의 공소장에도 빠져 있다. 피의자와 가족들의 얼굴과 실명, 직업이 공개되는 등 인권침해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법원이 나름으로 사건의 가닥을 잡으려 애쓴 점은 평가할 만하다. 법원은 국가기밀의 개념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언급하면서 “엄격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당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국가기밀이 아니라거나 기밀로서의 실질 가치가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는 법원의 이번 판단을 계기로, 널리 알려진 사실까지 국가기밀로 간주해 간첩을 양산해 온 공안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수사관행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피고인들의 주장이 법정에서 균형있게 받아들여져 일심회가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사실판단을 내린 과정 등도 ‘공판중심주의’가 자리를 잡아가는 좋은 사례로 꼽힐 만하다. 또 변호인 접견이 제한된 기간에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해선 증거능력을 아예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힌 것은 피의자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진일보한 판단이다. 이는 “간첩사건에서 변호인의 조력권을 제한하는 입법을 하겠다”는 검찰의 태도와 크게 대비된다.
그렇지만 법원의 이번 판결은 디지털 문서의 증거능력 등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또 국가보안법의 존재 이유에 대한 판단 등도 시민사회의 요구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공안사건에 대한 태도가 한층 성숙해져야 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음은 분명하다. 검찰과 국정원도 이를 깨닫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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