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17 18:40
수정 : 2007.04.17 18:59
사설
미국 동부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그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30여명이 숨지고, 또 그만큼 되는 사람이 다쳤다. 미국 사회는 학생과 교사 15명이 숨진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떠올리며, 큰 충격에 빠졌다.
왜 이런 사고가 다시 벌어졌는지에는 여러 분석이 있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여길 정도로 인명을 경시하는 현대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의 경우엔, 부정적인 총기문화가 바뀌지 않고 있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8년 전 콜럼바인 고교 사건 당시 미국 사회는 총기규제를 강화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을 벌였지만, 아무런 실질적 규제 조처를 취하지 못했다. 규제론자들은 면허제 등 총기구입 절차를 까다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론자들은 규제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이를 막았다. 오히려 총기사용 허용 범위는 갈수록 확대돼 2005년 11월 플로리다를 시작으로 15곳 이상의 주가, 위협을 받을 경우 굳이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 없이 곧바로 총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정당방위권 확대법’을 시행하고 있다. 여기엔 총기규제를 요구하는 단체의 로비 비용이 총기 소유권을 주장하는 로비단체의 5분의 1 수준에 그친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결과 학교내 총기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 와중에도 개인의 무기 휴대 권리를 인정한 수정헌법 제2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보수 진영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총기규제 여부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논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 문제가 쟁점이 된 2004년 대선 때도 조지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은 총기규제에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에도 미국 사회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고 또다시 비슷한 참극을 겪는 게 어디 미국뿐이겠는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