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23 18:23
수정 : 2007.04.23 19:03
사설
외교통상부가 국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특위의 문서 유출 사건 수사를 검찰에 의뢰한 것은, 여러모로 이례적이고 억지스럽다.
정부의 수사의뢰 대상이 된 ‘한-미 FTA 고위급 협의 결과와 주요 쟁점 협상 방향’은 ‘대외비’로 분류된 문건이지, 법률로 지정된 비밀문건이 아니다. 비밀누설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이나 국가보안법 등을 이런 대외비 문건에 적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비밀의 범위를 좀더 넓게 봐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선, 수사의뢰된 문건의 내용이 대부분 이미 보도된 것들이어서 비밀로서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는 반론이 따른다. 앞서 조사에 나선 국회 에프티에이 특위 ‘대외비 문건 관련 진상조사소위’도 지난달 7일, “대외비는 국가기밀이 아니다”라며 형사처벌의 대상이 안 된다는 결론을 특위 전체회의에 보고한 바 있다. 정부의 수사의뢰는 국회의 이런 결정에 정면으로 반대된다.
감사원이나 선관위 같은 독립적 헌법기관이 아닌 행정부처가 국회를 대상으로 수사의뢰를 한 것도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국방연구원의 모의전쟁 분석결과나 미래 한-미 동맹 정책구상회의(FOTA) 속기록 등 대외비 문건보다 훨씬 민감한 2·3급 기밀들이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공개됐을 때도 외교부나 국방부는 유감 표명이나 경고에 그쳤다. 형평성을 따지기 앞서, 죄가 되기 어려운 행위를 한 달 여 뒤에야 뒤늦게, 무리한 방식으로 문제삼은 경위와 의도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선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회의 조사결과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바도 있다. 정부가 이런 분위기에 따라 이달초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돼 국회로 넘어오게 됐다는 점을 의식해 수사의뢰에 나선 것이라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한-미 협정에 비판적인 의원들과 언론을 겨냥해 엄포를 가한 것으로, 자유무역협정 비판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 것이 된다.
이와 함께 정부의 이번 수사의뢰는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을 무디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정부와 국회의 관계에 매우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정부는 헌정에 미칠 이런 악영향을 사전에 고려해야 했다. 검찰은 외교부의 수사의뢰에 대해 일단 수사에 나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런 식으로 처리될 사안이 아니다. 정부는 수사의뢰를 철회하는 게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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