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25 19:07
수정 : 2007.04.25 19:28
사설
여섯살짜리 여자 어린이가 의붓어머니한테 맞아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아이가 숨지기 열흘 전쯤 경찰과 복지사가 어린이 학대 신고를 받았으나 제대로 조처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사회가 이 어린이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참으로 심각하게 여겨야 할 사안이다.
어린이들을 괴롭히는 폭력은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 그 가운데 성폭력이나 유괴 따위는 아주 질 나쁜 범죄 행위라는 인식이 확고하고 사건이 터지면 사회 전체가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범죄를 뿌리뽑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흔한 범죄가 가정내 어린이 학대다. 못된 의붓 부모들이나 자녀를 학대하는 걸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린이 학대를 포함한 가정내 폭력은 바로 우리와 우리 주변의 일이다.
문제는 부모가 자녀를 때리거나 학대하는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이 여전히 약하다는 점이다. ‘사랑의 매’라고 미화하기 일쑤고, 경찰이나 어린이 보호 전문가들이 개입하려 하면 ‘남의 일에 왜 참견이냐’, ‘내 자식도 내 마음대로 못하냐’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런 탓인지 경찰도 가정내 아동학대 사건 개입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 이번 사건만 해도, 아이를 때린 어머니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고 아이도 말을 하지 못해서 경찰이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그 탓에 학대받던 어린이는 구조받을 마지막 기회를 잃고 말았다.
어린이들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키는 건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누구든지 어린이 학대를 신고할 수 있지만, 특히 교원, 의료인, 구급대원, 보육시설 종사자 등에게는 학대신고가 법적 의무로 규정돼 있다. 그리고 경찰과 아동보호 전문기관 종사자는 학대받는 어린이에게 응급 조처를 해줄 의무가 있다. 이런 이들은 어린이 학대를 그냥 지나치는 게 법적인 의무를 어기는 중대한 행위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가정 안팎 어린이 학대를 사회 전체가 예민하게 인식하는 것은 아이들을 온갖 폭력과 범죄에서 지키는 첫걸음이다. 모든 구성원이 학대를 감시한다면 성폭력이나 유괴 따위의 다른 범죄를 막는 효과도 함께 거둘 수 있다. 작은 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이 없이 큰 폭력에 맞서는 자각과 인식이 절로 생길 수 없다. 어른들 모두 명심해야겠지만, 경찰이나 어린이 보호 전문가처럼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이들은 더 큰 의무감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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