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27 17:47
수정 : 2007.04.27 19:32
사설
한화 김승연 회장의 술집 종업원 보복폭행 사건은 한 재벌 회장이 우발적으로 벌인 일로 넘길 수만은 없다. 아직도 법치주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재벌 회장의 위세에 짓눌려 피해자들은 숨을 죽였고,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 속에서 사건은 조용히 묻혀갈 뻔했다. 김 회장 또한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지 않았다면 애초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일 수 있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막강한 돈의 힘 앞에 정의가 고개숙인 사례를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았다. 돈많은 재벌들이 법조계 출신이나 전직 고위공무원을 대거 채용하는 이유를 우리는 잘 안다. 그들이 뒷돈으로 권력자를 매수한 사건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사람들이 돈의 힘 앞에 굴복하면서,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이 싹을 틔우고 무성히 자랐다. 이번 사건도 넓게 보면 그런 환경 아래서 벌어진 일이다. 이번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고 합당한 처벌을 함으로써, 돈의 힘에 대한 맹신을 깨뜨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재벌 회장도 법 앞에선 평등함을 보여야 한다.
경찰 수사가 늦게나마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경찰은 서울시경찰청의 지휘 아래 수사팀을 44명으로 늘려 사실상 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 조사를 서둘러 30일에는 중간수사 결과도 발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경찰 고위간부는 김 회장의 폭행사건을 미리부터 ‘단순 폭행’으로 규정한다. 김 회장이 피해자에게 직접 가한 폭력이 어느 정도인지와 별개로, 보복폭행의 실질적 지휘자가 김 회장이라면 사건 전반에 대한 책임도 그에게 있다 할 것이다. 미리 선을 긋는 것은 개운치가 않다. 경찰이 김 회장의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하면서,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도 석연찮다.
경찰은 이 사건을 처리해 온 과정에 대해 국민들이 큰 의혹을 갖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건 뒤 피해자들에 대한 조직적인 입막음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부라도 수사에 소홀함이 있거나 진실을 숨겼다가 드러날 경우 이미 땅에 떨어진 경찰에 대한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사건 자체 수사와는 별개로 경찰의 수사 과정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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