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29 18:33
수정 : 2007.04.29 19:19
사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이 엊그제 신입생 선발제도를 기존의 성적 중심에서 종합적 인성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식 습득에만 몰두하는 ‘공부기계’보다, 창의성과 리더십을 두루 갖춘 사람을 뽑겠다는 것이다. 미래의 국가 경쟁력이 단순한 지식 누적형 인재가 아니라, 창조적 인재들한테 달렸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선택이다. 이른바 교육 선진국들이 대부분 채택하고 있는 원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입시 현실을 고려하면 상당한 파격이다. 이른바 주요 대학들과는 상반되는 방향이다. 서울대 등은 최근 오히려 수능시험 성적을 더 중시하는 내용의 2008학년도 입학전형을 발표했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 폐해를 줄이기 위해 내신 반영률을 높여달라는 교육 당국과 시민사회의 거듭된 요청은 간단히 외면당했다. 서울대는 일반전형에서 수능성적만으로 2~3배수를 먼저 선발한다. 내신은 1, 2 등급 모두 만점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실질 반영률을 낮췄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정시 선발 정원의 50%를 수능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수능 우선 선발제를 신설했다. 문제풀이에 익숙한 ‘공부기계’만을 더욱 정밀하게 골라 뽑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린 카이스트의 결단은 여간 큰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카이스트는 다른 대학들의 질시와 눈총을 예상해야 한다. 학교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하는 문제는 이보다 더 부담스럽다. 선발된 학생의 잠재력을 계발하는 책임은 이제 학교가 전적으로 져야 한다. 이런 용기는 미국 미시간대학 총장 자리까지 거절했던 서남표 총장의 자신감에서 나왔을 것이다. 사실 본고사 고교등급제 부활을 주장하는 보수 언론이나 정치권이 흠모하는 미국에서, 학력고사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거나 본고사를 치르는 대학은 없다.
카이스트의 신입생 선발제도 개혁안은 아직 추상적이다. 핵심이라 할 창의성, 탐구력, 논리성, 사회성, 자기관리 능력 등을 측정할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큰 방향만 제시됐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의지다. 모범으로 삼을 대학이 유럽이나 미국엔 많다. 속히 후속작업이 이뤄져, 성적순 선발에 매달릴 뿐 학교 교육은 등한시하는 이른바 주요 대학들에 큰 자극제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최종안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지역·계층선발 같은 제도가 포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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