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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02 18:02 수정 : 2007.05.02 19:46

사설

한국은행이 내후년부터 10만원권과 5만원권 지폐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묵은 과제였다. 정부와 한은 사이의 이견으로 논란이 이어져오다 지난해 12월 국회가 고액권 발행 촉구안을 의결한 뒤 발행 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한은이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만시지탄이라며 환영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대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고액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필요한 측면도 있고 부작용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황은 고액권 발행 쪽에 무게를 더한다. 현행 최고액권인 1만원짜리가 나온 건 34년 전이다. 그 사이에 소비자물가는 12배 이상, 국민소득은 원화기준으로 150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경제와 거래 규모에 견줘 최고액권 액면가가 낮고 그래서 불편이 따른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10만원 짜리 자기앞수표가 연간 10억장이나 발행되고 있는 게 이를 말해준다. 자기앞수표를 쓰면 되지 않냐고도 하겠지만, 수표는 상대적으로 위·변조가 쉽고, 제조·취급에 따른 낭비도 만만치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최고액권 평균가액이 원화로 따져 35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외국 여행 때 현지 화폐 값어치가 낮아 거래할 때 돈을 뭉텅뭉텅 주고받게 되면 왠지 그 나라가 업수이 여겨지기도 하는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가 화폐로만 보면 그런 처지인 게 마뜩잖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긴 해도 너무 서두를 일은 아니다.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하면서 고액권 필요성이 과거보다 준만큼, 한두 해가 급할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다. 고액권 발행 때 예상되는 부작용을 면밀히 따져 미리 충분한 대책을 세우는 게 더 중요하다. 화폐 액면가가 높아지면 돈 가치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인플레이션을 부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고액권 발행에 앞서 경제 여건이 충분히 무르익었는지 살피고, 통화관리에도 한층 더 신경써야 한다. 꼬리표가 없는 고액권이 소득탈루나, 불법 정치자금 또는 뇌물 수수 등 검은돈 거래를 더욱 쉽게 할 위험성도 있다. 우리 사회가 많이 투명해졌다지만 괜한 불을 지피는 건 아닌지 아직은 걱정스럽다. 정부와 한은 모두 대책을 마련하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여건이나 대책이 충분치 않다면 실행을 좀 늦춰도 문제가 없다. 세간의 걱정을 한낱 ‘기우’로 치부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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