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03 18:51
수정 : 2007.05.03 18:51
사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가 말로 이뤄지는 것이니, 바로 정치 행위다. 그제는 청와대 누리집 ‘청와대브리핑’에 ‘정치, 이렇게 가선 안 됩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정치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열거하고, 가치와 노선을 중심으로 한 정당 정치를 강조한 글이다. 그르다고 할 수 없다. ‘한국정치 발전을 위한 대통령의 고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글 내용을 뜯어보면, 특정 대선후보들을 겨냥한 듯한 ‘가시’가 느껴진다. 범여권 통합 움직임을 비판하면서, ‘열린우리당 사수’를 주장하는 정치적 메시지도 담겼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대통령도 정치인이니 정치 행위를 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노 대통령 스스로 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요즘 행동은 지나친 감이 있다. 무엇보다, 당적을 버린 대통령이 그 당의 운명에 대해 공개적으로 참견하고 흔드는 게 적절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모양새도 좋지 않거니와, 이런 발언이 오히려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범여권의 여러 모색을 꼬이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전임 대통령 가운데선 이런 예가 없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들의 탈당은 대개 정치적 중립을 강조함으로써 국정을 원활하게 마무리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파의 수장을 자처하는 듯한 태도로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게 산적한 임기말 국정현안 처리에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노 대통령이 자신의 영향력을 과도하게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이번 글 말고도 노 대통령은 고건 전 총리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등 범여권의 잠재적 대선후보들을 공격하는 발언을 해, 크고 작은 정치적 상처를 입혔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는 대선후보 선정에 영향을 끼치려는 불공정한 간섭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노 대통령 측근인사들이 지난달 말 ‘참여정부 평가포럼’을 발족해 본격적인 정치 세력화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선 마뜩지 않다. ‘청와대당’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를 헤아려야 할 것이다.
‘노무현 이후’에 대한 모색은 ‘노무현 시대’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통령 자신이 여기에 지나치게 영향을 끼치려 한다면, 이런 모색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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