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06 18:03
수정 : 2007.05.06 20:06
사설
지난주말 일본 교토에서 열린 ‘아세안+3’, 곧 한·중·일과 아세안 회원국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의미있는 합의가 있었다. 외환위기 발생 때 역내 국가들이 서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맺은 양자간 통화 스와프 계약을, 모든 참여국에 법적 구속력을 갖는 지역 금융협력체 형태로 발전시키기로 한 것이다. 원칙적 합의 수준이나 이것이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IMF)을 향한 큰걸음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2000년 타이 치앙마이 재무장관 회의를 계기로 통화 스와프 방식의 역내 통화협력 체계가 마련된 뒤 적지 않은 발전이 있었다. 스와프 계약 규모는 800억달러로 불었다. 또 위기에 처한 나라가 각국에 개별적으로 지원을 요청해야 했던 데서, 의장국에만 요청하면 신속하게 지원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위기 대응력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중·일을 중심으로 나라별 계약을 다자간 협약으로 바꿔 공동펀드처럼 운영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이번 재무장관 회의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물론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이 곧 탄생하리라고 기대하는 건 섣부르다. 국제통화기금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이 큰 걸림돌이다.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아시아의 독자적 기금 설립에 제동을 걸고 있다. 거대 외환 보유국인 한·중·일이 뭉치면 못할 바도 아니나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렵다. 서로 주도권을 쥐려고 해 합의가 어려울 뿐더러 미국에 맞설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지금도 ‘아세안+3’ 통화 스와프 자금의 80%는 국제통화기금 프로그램에 맞춰 쓰이게 돼 있을 만큼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의 견제가 심하다.
외환위기가 아시아를 휩쓴 지 10년이 됐다. 위기는 언제 올지 모른다. 또다시 미국식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국제통화기금에 끌려다닐 수는 없다. 아시아 나라들의 외환사정이 넉넉해진 만큼 스스로 위기에 대응할 체제를 꾸릴 때도 됐다. 우선은 국제통화기금과 연계 비중을 낮춰 독자적 자금운용 폭을 넓히고, 나아가 한·중·일이 힘을 모아 실질적인 역내 금융협력체 설립을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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