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08 18:55
수정 : 2007.05.08 18:55
사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금-산 분리 원칙을 흔드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그제 “누군가 물꼬를 트는 발언을 해야 한다”며, “국내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진출 허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금산분리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견제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될 때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뤄지고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가능하다. 쉽게 생각해 보자. 재벌기업이 은행을 지배할 경우 그 은행이 대주주인 재벌기업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금융회사를 이용한 경제력 집중도 우려된다. 재벌기업들은 계열사들을 통해 계열 금융회사의 덩치를 키워 왔고, 다시 금융회사를 이용해 사세를 키웠다. 그뿐 아니다. 소수 지분을 가진 그룹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금융회사의 자금을 동원해 왔다.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을 통해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고 사세를 키워 온 삼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나라가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고 있다. 미국도 1990년대 말 산업자본의 은행 진출을 두고 논란을 벌인 적이 있으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다른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은행을 지배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법으로 금지돼 있거나 산업 문화로서 금산분리 원칙이 정착돼 있다. 혹시 유력 대선 주자들이 금산분리 원칙을 풀어 기업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오히려 시장경제 질서를 무너뜨리고 금융업의 전문화를 가로막는 일이 될 것이다.
금산분리 철폐론자들은 외국 자본에 대한 국내 자본의 역차별을 문제삼고 있다. 외국 자본은 10%까지 은행 지분을 소유할 수 있지만 국내 자본은 4%를 초과하지 못해 은행들이 외국인 손에 넘어간다는 논리다. 그러나 외환은행과 제일은행의 경우는 외환위기 직후의 비상 상황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은행 지분 매각을 굳이 서두를 이유는 없다. 은행을 지배하는 대주주가 반드시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형식논리에 불과한 역차별론 때문에 시장경제 질서를 뒤흔들고 금융산업의 큰 밑그림을 망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