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11 18:18
수정 : 2007.05.11 19:53
사설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1차 협상이 마무리됐다. 전체 상품 95%의 관세를 철폐하고 공산품은 10년 안에 관세를 모두 없애자는 기본 원칙에 합의했다. 시한에 얽매여 일방적으로 끌려다녔던 한-미 협상 때와 달리 철저하게 국익을 챙기는 신중한 협상을 기대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달리 유럽연합과의 협정은 긍정적인 면이 있다. 우리와의 교역규모가 연간 780억달러를 넘는 거대 경제권인데다 미국과 중국에 지나치게 편중된 교역 상대를 다변화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농산물, 시청각, 투자자-국가 소송 등 민감한 분야를 제외한 협상이기에 시장 개방의 충격도 다소 약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유럽연합은 금융·통신 등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에 못지 않은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고, 술·치즈·생수 등 식품 분야 또한 만만치 않다. 더불어 자동차·화장품·패션용품 등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 고가품 수입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 수도 있다. 지적재산권 보호장치 강화, 특소세 일부 폐지, 우편택배 시장 민영화, 기술장벽 제거 등 국내 제도의 큰 변화를 수반하는 요구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럽연합과의 협정 체결 효과를 두고서는 아직 객관적인 평가가 나오지 않았다. 효과를 부풀린 국책 연구소들의 과장된 보고서만 보고 일을 추진할 수는 없다. 한-미 협정 추진 때처럼 졸속협상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백지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타결을 전제로 한 협상은 곤란하다. 철저하게 실리 위주 협상을 해야 하며, 협상 자체를 우리가 주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는 지금 캐나다와 동시 협상을 진행 중이며, 인도·중국과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을 빨리 마무리짓고 다른 나라로 넘어가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위험한 발상이다. 또 다시 졸속협상이 될 수도 있다. 주요 사안 하나하나를 두고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들과 충분한 내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한-미 협상 때처럼 공청회 한번 하지 않고 국민과 국회가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가는 협상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개방은 언제나 좋은 것’이란 일반론만 내세울 게 아니라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상세한 손익계산서를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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