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11 18:19
수정 : 2007.05.11 19:54
사설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과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어제 만나 이른바 범여권 통합을 처음으로 논의했다. 이들은 “대선 승리와 시대정신의 구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고 노력을 경주해 나가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보면 도대체 왜 만났는지, 무엇을 추구하자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먼저 통합 논의의 기본 전제가 되는 가치와 노선에 대한 판단이 완전히 다르다. 정 의장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등을 위해 민주개혁 진영이 힘을 모아야 한다”며 두 당의 노선 일치를 전제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두 당이 통째로 합하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잡탕식 통합이 된다”며 양당의 정체성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두 당의 가치와 노선이 일치한다는 객관적인 평가가 있더라도 몇 해 전에 싸우고 헤어졌다가 다시 슬그머니 합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하물며 통합을 하자면서 서로 노선이 다르다고 선부터 긋는다면 누가 통합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겠는가. 두 당은 통합을 거론하기 전에 자기 점검부터 먼저 해야 하며, 노선 차이가 많다면 통합 운운할 필요도 없다.
통합 방법론에서도 의견차가 컸다. 정 의장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신설 합당식으로 합하자고 했으나, 박 대표는 민주당 중심의 부분 통합을 주장했다. 그는 중도세력통합추진협의회에 ‘열린우리당 대표’는 안 되고 ‘정치그룹 대표’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열린우리당 안의 분들이 중도세력 통합에 참여하는 것을 저지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통합이 아니라 사실상 상대당 의원 빼가기를 용인해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 안의 특정세력인 친노그룹을 두고서는 배제의사를 분명히했다. 박 대표는 “국정 실패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 정당의 일원으로 있다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지금은 중도세력의 통합만 한 뒤에 선거 막바지에 후보 단일화를 하자는 식으로 말했다. 참으로 기회주의적이다. 열린우리당의 어느 누구도 노무현 정권의 공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정세력을 배제한다고 해서 그 부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범여권 통합을 운위한다면 열린우리당의 자산과 부채를 계승하는 바탕 위에서 새로운 대안을 내놓고 공정한 심판을 받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정치판을 어지럽히지 말고 각자 딴 길을 걷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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