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13 18:16
수정 : 2007.05.13 21:39
사설
병역 특례와 관련된 비리가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부터 이 사안을 수사해온 서울동부지검은 1차로 62개 병역 특례 업체를 조사한 데 이어 며칠 전부터 서울지역 1800여곳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확대한 상태다. 수시로 터져나오는 이런 병무 비리가 사회 불신을 키우고 군 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비리 수법도 가지가지다. 가장 흔한 유형은 기업체가 돈을 받고 병역 특례자를 채용하는 것이다. 채용 대가는 한명당 3천만~4천만원 수준이었으나 특례자 정원이 줄어든 2005년 이후 1억원대까지 올랐다고 한다. 업체들끼리 돈을 받고 정원을 빌려주거나 특례자 채용 대가로 거래처 납품가를 깎은 경우도 있었다. 특례 업체가 병역 특례자를 다른 업체로 보내 근무시키거나 서류를 조작해 법인 설립 전에 특례 업체로 지정받은 사례도 드러났다. 한 저명인사는 4촌 이내 혈족을 특례자로 취업시킬 수 없도록 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자기 회사 대표를 다른 사람으로 바꾼 뒤 아들을 채용한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과거에는 없었던 신종 수법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고 검찰이 한탄할 정도다.
병역 특례 비리에 관련된 이들은 대부분 ‘돈 있고 힘쓰는’ 사람들이다. 병무청이 최근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에게 낸 자료를 보면, 특례 업체에 근무 중인 4급 이상 고위 공직자 아들 56명 가운데 15명 가량이 업무 성격과 무관한 전공에다 관련 자격증도 없었다. 이는 일부 계층에서 군 복무를 피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병력 특례 제도를 적극 활용해왔다는 세간의 추측을 확인시켜준다. 이들 병역 특례자 가운데는 병무청 실태조사 때만 일하는 척하고 평소에는 고시공부나 유학준비 등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병력 특례 비리의 일차적 책임은 관리·감독 관청인 병무청에 있다. 병무청은 병무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미봉책을 내놨을 뿐 실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이제 근본적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검찰의 수사 또한 전국 모든 특례 업체로 확대돼야 한다. 나아가 출산율이 높았던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병역 특례 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를 놓고 솔직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정보기술(IT) 벤처기업 등을 키우기 위해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국민의 시선은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