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18 18:02
수정 : 2007.05.18 18:56
사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재협상은 없다고 여러차례 강조한 정부가 재협상 가능성을 비치고 나섰다. 원칙적으로 반대지만 “양국에 모두 이익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전제를 달았지만 사실상 재협상을 검토하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재협상은 없다”, “재협상을 요구하면 한-미 에프티에이를 깰 수도 있다”고 하던 정부가 슬그머니 재협상 길을 터놓은 셈이다.
미국의 뜻은 의회가 수립한 새 통상정책에 따라 국제적인 노동·환경 기준을 협정 체결 국가에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국제 환경협약에 가입해 있어 환경 분야에서 문제될 것은 별로 없다. 복수노조 허용 등 국제노동기구(ILO)가 요구하는 5대 노동기준이 변수지만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사안은 아니다.
문제는 일관성 없이 끌려다니는 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자유무역 협상을 시작할 때 불합리한 무역구제 절차 개선 등의 분야에서 큰 성과가 있을 것처럼 공언했으나 거의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미국 국내법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 협상 시한도 그렇다. 미국 기준에 맞추다 보니 3월 말이라는 제약요건을 스스로 떠안았고, 협상 타결 자체에 급급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새 통상정책은 미국 기준일 뿐이다. 미국 자체도 강제노동과 아동노동 금지 등 새 통상협상이 요구하는 노동 기준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부터 먼저 기준을 갖추고 상대국에 요구할 일이다. 그럼에도 이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나중에 통상압력 수단으로 삼겠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된다. 더구나 정부는 오는 20일께 협정문 전문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몇차례나 강조했다. 그런데 문안 공개 이틀을 앞두고 재협상을 할 수도 있다니. 미국이 헛기침을 하면 국민과의 약속은 언제든지 내팽개쳐도 되는 것인가.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가 재협상을 이용해 실리를 더 챙기자는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익 여부에 대한 판단은 정부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다. 국민과 국회는 안중에 없는건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국민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재협상이 정말로 불가피하다면 이유를 국민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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