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4 17:08
수정 : 2007.05.24 19:12
사설
대전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다섯 사람과 한나라·열린우리·민주·국민중심당 등 네 정당의 대전시당 사무처 직원 여섯 사람이 그제 여드레 일정으로 국외 연수를 떠났다. 수천만원의 비용은 선관위가 댔다. 앞서 지난달에는 대구시와 경남·전북 선관위도 지역 정당 직원들과 비슷한 일정의 연수를 다녀왔다고 한다.
외국 정치제도를 배운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내용은 순전히 외유다. 대전 선관위팀의 경우 방문국인 터키의 정당 방문 등 정치제도 견학은 8일 동안 여덟 시간에 불과하고 나머지 일정은 국내 여행사의 여행 상품과 똑같이 터키의 유명 관광지 관람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혁신 세미나를 명목으로 이구아수 폭포 등 남미 여행을 꾀했던 공기업 감사 등의 행태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장소만 남미에서 터키로 바뀌었다. 국민이 낸 세금을 눈 먼돈으로 여겨 틈만 나면 국민의 눈을 피해 이 궁리 저 궁리로 예산 쓸 생각만 하는 공직자들의 한결같은 의식에 놀랄 따름이다.
더욱 큰 문제는 선관위 직원과 정당 간부 사이의 부적절한 유착이다. 중앙선관위는 3년 전부터 원활한 업무 협조를 위해 매년 네 시·도를 묶어 돌아가면서 각 정당 직원들과의 국외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 차례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공정한 선거 진행을 감시해야 하는 선관위와 감시 대상인 정당 사이에 국외여행까지 같이 해서 진행해야 하는 원활한 업무협조가 도대체 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밀착해 협력할 일이 있다는 얘기 역시 듣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심판격인 선관위 직원과 선수인 정당인은 장기간 국외 여행을 같이하면서 친분을 쌓아도 좋은 관계가 아니다. ‘원활한 업무 처리’를 하자면 오히려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내야 한다. 그런 엄격함이 일반 상식에 맞으며, 민주주의 운영 원리에도 맞아든다. 국가예산으로 정치권에 선심쓰지 말고, 선관위는 당장 잘못된 정치권과의 관계맺기를 중단해야 한다. 필요하면 독자적으로 직원들 연수도 시키고 견학도 보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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