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7 17:54
수정 : 2007.05.27 20:47
사설
미국 무역대표부가 지난주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영향을 받는 27개 분야의 민간 자문위원회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미 지난 1일 대통령과 의회에 보고한 것을 협정문 공개에 맞춰 일반에 알린 것이다. 국민 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줄 협상 내용을 일찌감치 따져보고 대응책을 주문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낯설다. 미국이 자기네한테 유리한 쪽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도 이렇게 철저한 준비를 해온 까닭일 것이다. 부럽고, 한편으로 자괴감이 느껴진다. 우리 업계와 민간 전문가들은 정부가 협정문을 공개하기 전까지 협상 세부 내용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협상 내용을 늑장 공개하고도, 정부는 제대로 된 토론 자리를 마련하기보다는 일방적 홍보에만 힘을 쏟고 있다. 나라의 중대사를 이런 식으로 결정해도 되는 것인지 걱정이 크다.
정부가 뒤늦게 공개한 협정문에는 우려스런 내용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국민의 약값 부담을 키울 의약품 관련 조항들, 실효성이 의문스런 농산물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처) 등은 일부일 뿐이다. 협상 결과 설치될 여러 개의 위원회는 앞으로 정부 정책을 크게 제약할 것이다. 협정문이 공개되면서 새로 논란거리로 떠오르는 사안도 적지 않다. 정부는 시민단체들이 협정문을 우리에게 가장 불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정부 주장이 상당 부분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회 있을 때마다 자세한 설명을 통해 오해를 풀어가겠다”는 정부 태도는 안이하고 오만하다. 정부는 홍보물을 수십만부 찍어 돌리겠다고 한다. 관변 연구소가 중심이 된 토론회들도 일방적인 홍보의 연장선 위에 있다. 듣지는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것이다.
협정이 발효하려면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국회의 본격 검증을 협정 정식 서명 이후로 미뤄서는 안된다. 법령을 고쳐야 하거나 법령 개폐에 제약을 두는 내용이 담긴 협정에, 큰 틀의 국민적 합의도 없이 정부가 서명하는 것은 월권이다. 이를 방치하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다. 다음달 말 협정 서명 때까지 시간이 별로 없다. 국회는 협정 찬반 여부를 떠나 업계와 민간 전문가들이 두루 참여하는 실효성 있는 검증 자문기구를 서둘러 구성해야 한다. 청문회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정부도 협정문 해석을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논란이 되는 사안에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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