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7 17:53
수정 : 2007.05.27 20:47
사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에서 경찰 간부들이 한화 쪽 로비에 휘둘려 수사를 왜곡시켰다는 의혹이 경찰청의 자체 감찰 결과 일부 사실로 확인되면서, 경찰 조직이 충격과 좌절로 들끓고 있다. 검찰에 외압 의혹 관련 간부들의 수사를 맡긴 것에 대해선 경찰의 ‘치욕’이라는 말도 나온다. 지도부에 대한 불신으로 지휘체계 붕괴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경찰 구성원들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경찰이 지금 겪고 있는 위기는 지도부나 간부 몇몇만 탓할 일이 아니다. 조직 전체의 위기다. 위기의 본질은 신뢰 상실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 국가 공권력으로서 응당 지녀야 할 엄정한 자세를 잃었다. 재벌기업의 고문으로 취직한 전직 경찰청장의 로비에 수사 지휘선상에 있는 간부들이 원칙과 규정을 간단하게 외면하고 수사를 왜곡했다. 재벌의 하수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도 할말이 없게 됐다. 다른 ‘소소한 사건’ 수사에서 이런 식의 외압으로 얼마나 많은 왜곡이 있었겠느냐는 의심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경찰은 또 이번 사건의 수사 단계마다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자 조사를 하고도, 청탁 전화를 받고도, 수사를 강제 이첩하고도, 봐주기 수사를 하고도 여러 경찰 간부들이 모두 ‘안 했다’로 일관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의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곧 드러날 거짓말이나 책임전가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는 처세 방식이 여전히 통하는 조직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지금 경찰은 그 본래 기능인 수사능력조차 의심받고 있는 형편이다. 감찰 조사 결과 현장조처 미흡, 초동수사 소홀, 부당한 첩보 하달, 수사 실무책임자와 조직폭력배 간의 부적절한 관계 등이 확인됐다. 총체적 부실이다. 언론의 적극적 폭로가 없었다면 이 정도까지 의혹이 규명됐을지도 의문이다. 외압 의혹 수사를 검찰이 맡은 것 역시, 경찰이 자정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이런 상태에서 수사권 독립을 거론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경찰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외압에 약한 조직구조, 당장의 보신에 급급한 조직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조직 전체가 뼈를 깎는 쇄신 없이 경찰총수의 사퇴 정도로 사태를 미봉하려 한다면,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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