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8 18:14
수정 : 2007.05.28 19:01
사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일 여권 대선주자 등을 만나 여권 통합을 촉구하는 내용의 발언을 하고 있다. 그저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는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단일 정당을 구성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연합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범여권의 정치세력이 통합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길’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정치 훈수다.
민주국가에서 누구든 주요 정책이나 현안 등을 두고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다. 전직 대통령도 경륜과 철학을 바탕으로 주요 사안에 대해 조언하거나 발언할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범여권 정치인들에게 양당제가 우리 실정에 맞는 만큼 대선 전에 단일화 하는 게 낫겠다고 충고하는 것은 크게 상궤를 벗어난 일은 아니라고 본다. 특정 정치세력을 폄하하거나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았던 정치세력에 대해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바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어떻든 일선에서 물러난 전직 대통령이 현실정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아름답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김 전 대통령 스스로도 “은퇴한 대통령으로서 말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좋지 않다”고 한 바 있다. 더디고 답답하더라도 현역 정치인들 스스로 현실정치를 풀어나가도록 맡겨 놓는 게 궁극적인 정치발전의 길이다. 장외에서 훈수를 두기 시작하면 선수들의 실력 향상도 어려울 뿐아니라 자칫 게임의 공정성을 두고 시비를 낳을 수 있다.
잦은 정치적 발언은 김 전 대통령 본인을 위해서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의 발언이 유리하다고 보는 정치세력은 좋아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쪽에서는 배척하거나 외면하기 마련이다. 국민은 탁월한 정치 이론가보다는 존경할 만한 원로 정치인을 더 바란다. 유념할 일이다.
김 전 대통령의 훈수 정치도 문제지만, 훈수를 애써 구하는 여권의 대선주자 등 주요 정치인들의 행태가 더 한심하다.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집은 요즈음 여권 인사들로 문전성시라고 한다. 대선을 앞두고 호남지역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빌리려는 속셈이다. 나라를 경영하겠다는 지도자가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가다듬지 않고 전직 대통령의 집이나 기웃거려서야 되겠는가.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는 정치인에게 미래가 안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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