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01 17:41
수정 : 2007.06.01 18:54
사설
서울에서 나흘 동안 열린 제21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아무런 합의를 하지 못하고 끝났다. 북한 핵실험 이후 남북 관계가 정상화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 협력 등 기존 합의는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하지만 상당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회담이 사실상 결렬된 일차적 책임은 남쪽에 있다. 정부는 제20차 장관급 회담에서 대북 쌀 지원을 약속하고도 이번 회담 직전 북한이 2·13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첫회분 선적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합의 불이행의 주된 원인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데 있는데도 북쪽에만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는 남북 관계를 6자 회담에 종속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디에이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파국적 상황이 아님에도 인도적 사안인 쌀 지원을 협상 카드로 활용한 것도 바른길이 아니다. 여기에 대미 의존 자세가 영향을 끼쳤다면 큰 유감이다. 미국은 한국의 동맹국이고 6자 회담의 핵심 당사국이긴 하지만 남북 관계의 주역은 아니다.
융통성 없는 모습을 보인 북쪽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남쪽 대표단은 쌀 지원을 않겠다는 게 아님을 충분히 설명하고 국제기구를 통한 옥수수 지원 등도 고려했으나 북쪽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러는 바람에 남북 국책기관 사이 회의, 국방장관 회담 재개, 남북 철도의 단계적 개통,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 다른 의제는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북쪽이 바라는 쌀 지원도 당분간 더 어려워졌다. 이런 결과가 북쪽 주민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제 정부의 대북 정책은 냉엄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우선 일관성 부족이다. 역사적인 남북 열차 시험운행을 한 지 불과 열흘 남짓 만에 장관급 회담을 결렬시킴으로써 다음 단계 남북 관계의 그림을 그리기도 어렵게 됐다. 더 큰 문제는 남북 관계의 독자성을 스스로 부인한 점이다. 한반도 고유의 과제를 풀자면 남북 관계 확대가 필수적이며, 이는 핵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등이 현실적 과제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오히려 거꾸로 가는 길을 택했다. 심각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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