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04 18:06
수정 : 2007.06.04 19:23
사설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로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경의선 가좌역 모습은 보기에도 아찔하다. 그제 오후 철길 옆 공사장 옹벽이 무너지면서 50m 깊이의 큰 구덩이가 파여 생긴 일이다. 애초 옹벽 기초공사가 부실해서였는지, 철길 아래로 물이 스며들어서인지 아직 사고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원인이 어디 있든, 우리 건설업체들의 토목공사 수준이 아직도 이런 붕괴 사고를 막지 못할 만큼 뒤떨어진 정도인지 한심하게 느껴진다.
좀체 고쳐지지 않는 안전 불감증은 더욱 한심하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번에도 아찔한 순간이 이어졌다. 현장 안전 감시요원이 사고 40분 전 옹벽 붕괴 조짐을 발견했음에도 그 뒤 수백 명을 태운 두 대의 통근열차가 철길을 지나갔다. 붕괴 사고 불과 2분 전에도 무궁화호 열차가 앞 역을 출발했는데, “오면 안 된다”는 현장 감시요원의 재보고를 받은 가좌역장이 급히 정지시켰다. 1993년 지반 침하로 열차가 탈선하면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구포역 열차탈선 사고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겠다.
안전 감시요원이 법에 따라 현장에 상주하고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공사장 인부와 장비만 대피시켰을 뿐, 철도공사 쪽에는 “서행해야 한다”고만 보고했다고 한다. 철도공사 쪽은 감시요원의 말만 그대로 따랐을 뿐, 지반 붕괴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현장의 위험 정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건설업체나 철도공사 모두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아니겠는가. 얼마 전 한 초등학교에서 소방당국이 이끄는 교육을 받다가 굴절 사다리차에서 학부모가 떨어져 숨진 사고도 ‘설마 줄이 끊어지겠느냐’는 잘못된 믿음이 부른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고가 이런 작은 방심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겨야 한다.
이번 사고로 서울역과 수색역 사이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하루 240여 차례나 열차가 다니는 철길이라 시민 불편이 적지 않다. 복구를 서둘러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사고 원인을 따져 위험부터 먼저 제거해야 한다. 복구 과정에서 옹벽이 더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열차 운행을 재개하기에 앞서 주변 옹벽도 안전 진단을 철저히 해서 더는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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