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05 17:56
수정 : 2007.06.05 20:06
사설
동유럽 지역 미사일방어(MD) 체제 도입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유럽에 엠디체제 도입을 강행하면 러시아는 유럽에 미사일을 겨냥할 것이며, 이는 “핵 충돌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예정대로 그제 체코를 방문한 데 이어, 8일에는 폴란드를 방문한다. 미국은 2013년까지 체코에 미사일 방어용 레이더 기지를, 폴란드에 10기의 요격미사일을 각각 배치할 계획이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이런 상황을 두고 냉전에 버금가는 ‘불화의 시대’가 왔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올해 초 미국이 동유럽 엠디체제 도입계획을 밝혔을 때부터, 이 계획이 러시아의 턱밑에서 러시아를 포위하려는 전략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 시스템이 이란 등 이른바 ‘불량국가’를 겨냥하고 있다는 미국의 설명에 대해서도, 푸틴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은 미국이 요격해야 할 정도의 로켓을 확보하고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다른 계산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푸틴 취임 뒤의 경제성장과 오일달러에 힘입어, 강대국 위상 회복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 이번 논란에도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등의 정치적 의도가 깔렸을 수 있다. 특히 러시아가 지난달말 미사일방어망을 무력화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한 것은, 낡은 핵 억지력을 현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미-러 신경전이 군비경쟁으로 이어질 위험을 예고한다. 실제로 러시아는 미국이 미사일방어 체제 도입을 강행하면 유럽재래식 무기감축협약(CFE)을 백지화하고, 중거리 핵전력협정(INF)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말로 위협하는 수준이지만, 이런 전략적 도전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
이런 상황을 빚은 가장 큰 책임은 미국이 져야 한다. 어떻게든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에 바탕해 초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일방적인 대외정책이 다른 나라의 군비 확충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중국의 위성요격 시험과 지난달 러시아의 신형 미사일 발사가 좋은 사례다. 미국은 엠디체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엠디 체제는 요격 시험에 잇따라 실패하는 등 효용성을 의심받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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