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06 17:37
수정 : 2007.06.06 19:23
사설
노무현 대통령 발언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심의할 오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체회의를 앞두고, 청와대가 그제 의견서를 내면서 별도의 소명 기회를 줄 것을 요구했다. 위법 판단이 내려지면 헌법소원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전례가 없는 일들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선관위의 의사결정에 청와대가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미”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헌법기관에다 사실상의 압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무엇보다 선관위의 심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청와대가 헌법소원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은 잘못이다. 헌법소원 심판은 국민 기본권이 공권력에 의해 침해됐을 때 청구할 수 있다. 공권력의 최고 당사자인 대통령이 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문제도 ‘국민 노무현’이 아니라 ‘대통령 노무현’의 행동에 대한 것이다. 설령 헌법소원이 가능하다고 해도, 선거의 중립을 책임지고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할 행동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어느 정치인이 선관위의 결정을 수용하겠는가.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의 구성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거나, 혹은 사회적 논란을 통해 세력을 모으고 대선 국면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보겠다는 등의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면 더욱 비난받을 일이다.
문제가 된 노 대통령의 지난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 발언에 대해선, 다수 학자와 법률가들이 지나치다고 보고 있다. 탄핵 파동을 부른 2004년 열린우리당 지지 호소 발언보다 선거법 위반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앞으로 법률적 판단이 내려지겠지만, 적어도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노 대통령은 이전에도 선거 관련 발언을 했다가 2003년 12월과 2004년 3월 선관위로부터 각각 ‘공명선거 협조 요청’과 ‘선거중립 의무 준수 요청’을 받은 바 있다. 헌법기관의 제지를 다른 헌법기관이 무시하는 일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청와대도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 여부가 본질인 이번 사안을 ‘대통령의 정치활동 자유’ 문제로 오도하지 말아야 한다.
선관위는 청와대의 발언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바른 자세다. 한나라당의 고발에도 같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번 결정은 헌법기관의 자율성이 달린 문제다. 선관위의 엄정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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