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07 18:42
수정 : 2007.06.07 21:20
사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어제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 강연이 공무원으로서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에게 ‘선거중립 의무 준수요청’ 공문을 보냈다. 노 대통령은 이미 2004년 3월 선관위로부터 같은 조처를 받은 바 있다. 그때 조처가 탄핵 파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번 결정도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 대통령은 물론 선거를 앞둔 정치권 모두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청와대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선관위 결정의 법적 효력까지 의심하는 듯한 말도 나왔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부당한 공격에 맞선 정당한 대응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결정을 무시하려는 게 아닌지 매우 걱정된다. 청와대는 법적 대응 방침도 밝혔다. 이번 사안은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이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권한쟁의심판이나 헌법소원을 통해 헌법재판소에서 따져보겠다고 한다. 청와대 안에선 대통령도 정치인으로서 정치 활동의 권리를 누리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개헌 논란에 이어 또다시 정치적 논쟁을 벌이겠다는 태세다.
물론, 이런 논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권리를 대통령의 의무에 앞세울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은 권리보다 의무가 더 무거운 자리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 것도 국헌 준수 등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국가공무원법이 대통령과 국회의원 보좌관 등에게 공무원 정치활동 금지의 예외를 일부 인정했다고 해서, 행정권의 수반인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도외시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런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공직선거법의 ‘공무원의 중립의무’(9조)와 헌법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7조) 규정을 더 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헌정사의 경험을 보더라도 선거의 공정성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무거운 책무 중 하나다.
이번 결정으로 노 대통령은 큰 부담을 안게 됐다. 나름의 정치적 구상이 있었다면 그것을 실현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를 아쉬워해, 다시 무리수를 둔다면 더 큰 파장이 빚어질 수 있다. 대통령의 사려 깊은 판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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