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20 20:06
수정 : 2007.06.20 20:06
사설
검찰이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수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 13일 <한겨레> 기자와 만난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이 (이 회장) 기소를 서두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이런 뜻을 비쳤고, 어제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공식 브리핑에서 이런 방안도 검토 중임을 확인했다.
검찰의 이런 태도는 그동안의 것과 다르다. 2005년 10월 1심 재판부가 에버랜드의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박노빈씨의 유죄를 인정한 뒤, 검찰은 이 회장 공모 부분 수사를 진행하다가 이 회장 소환만 남긴 상태에서 “2심 결과를 본 뒤 이 회장 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수사를 중단했다. 당시 수사 관계자들은 항소심 뒤 이 회장 소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듯한 말을 자주 했다. 언제든 기소할 수 있을 정도로 수사가 다 돼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검찰이 지난달 말 2심 선고 뒤 태도 표명을 미적거리다 이제와 슬그머니 말을 바꾸는 것은 보기 딱하다. 이 회장 소환을 거듭 미뤄 결국 유야무야 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검찰이 내세우는 이유도 궁색하다. 검찰은 이번 사건엔 “아주 복잡한 법률적 쟁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법률심인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는 논리인 것 같다. 그러나 사실심인 1·2심에서 증거와 사실관계를 두고 큰 다툼은 없었다. 1·2심 재판부가 전개한 법논리가 조금씩 다르다지만, 결과는 모두 유죄였다. 유죄 사건에서 법리 논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범으로 의심되는 중요 관련자의 수사를 미루는 게 보통 있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죄 확률이 51%만 되어도 기소하는 게 검찰의 올바른 자세다.
이번 사건의 불법성은 1·2심 판결로 충분히 확인됐다. 눈앞에 드러난 큰 불법 사실을 방치하고 외면한다면, 다른 크고 작은 불법을 처벌할 때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안 검사장의 말은, 검찰이 아니라 변호인이 해야 어울린다. 검찰은 그런 고려를 하기에 앞서, 엄격한 법적용의 잣대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들이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검찰이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우리 법체제의 안정성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미루지 말고 당당하게 수사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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