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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4 17:57 수정 : 2007.06.24 19:28

사설

이땅의 모든 사람을 상시적으로 감청하도록 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지난주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모든 휴대전화 통화 내역과 통화자 위치정보 따위를 1년 이상 남기도록 하고 있다. 또 통신사업자들은 감청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개정안은 인터넷 이용자의 접속 기록도 남겨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온 나라의 거의 모든 통신 이용 상황이 빠짐없이 기록될 판이다. ‘완벽한 통신 감시’가 통신비밀보호법이라는 이름 아래 시행된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모든 통신 기록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인권이 실현되고 자유가 보장되길 기대하는 건 무리다. 누구와 언제·어디서 통화하고 어떤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는지 남이 알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개인의 자유는 위협받는다. 이 기록이 어떤 식으로 나를 옥죌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사람의 행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사업자들이 보관하는 통신 기록이 실제로 수사기관에 넘겨지는 일도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동안은 수사기관이 국가 안보 관련 범죄나 강력범죄 수사 따위에 필요할 경우 법원의 승인을 받아 기록을 요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자료 요구 대상 범죄에 영업 비밀이나 기술 유출 사건도 넣었다. 영업 비밀이나 기술 유출 사건은 범위가 모호하고 넓어서, 수사기관이 자료 요구를 남발할 위험을 한층 높인다. 게다가 신용카드나 버스카드 사업자에게도 자료를 요구할 근거가 생겼다. 통신만 문제가 아니다.

통신 기록의 보안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느냐도 중대한 문제다. 개인정보 유출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심한 게 우리 현실이다. 해킹 따위를 통해서 통신기록이 빠져나간다면 또 어떤 혼란과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 인터넷 접속 기록은 위조와 변조 가능성이 높아 증거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자,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가 기록 변경·삭제를 막기 위해 다른 기관의 모니터링을 받는 방안을 내놨다고 한다. 인권을 위협하는 통신기록 보관도 부족해서, 그 기록을 담고 있는 인터넷 사업자의 시설을 감시하자는 발상에는 할말을 잃을 지경이다.

국회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비밀을 보호하기는커녕 침해한다는 걸 인정하고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 폐기 말고 대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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