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29 18:04
수정 : 2007.06.29 19:01
사설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최종 마무리하고 오늘 협정문에 공식 서명한다. 지난 4월 협상 타결 이후 협정문안 공개와 재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드러난 경제·사회적 영향과 문제점을 고려할 때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국가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본다. 국회가 비준 동의를 거부하기를 요구한다.
우선 경제적 실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주장하는 기대 효과는 교역 증대, 투자 증대, 생산성 향상 세 가지다. 교역 증대 효과는 있겠지만 투자 증대와 생산성 향상 효과는 크게 부풀려졌다. 애초 취지인 제도 선진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은 이미 물건너 간 지 오래다. 값싼 임금과 같은 뚜렷한 강점이 없는 한 투자가 늘어나리라는 관측도 환상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쌀을 제외한 거의 모든 농산물 시장을 내줬다. 그뿐 아니다. 쇠고기, 스크린쿼터, 유전자조작 생물체, 지적재산권, 특허기간, 자료독점권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양보했다. 교역증대 하나만을 위해 수많은 국민의 피해를 감수할 수는 없다.
둘째로 이번 협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에 끌려다닌 불평등한 협상이었다. 정부는 4대 선결조건부터 시작해 마지막 재협상까지 미국 요구를 수용하기 바빴다. 반면 충분한 내부 영향 평가와 여론 수렴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적 공감대 없이 협상이 시작됐고, 협상이 끝난 뒤에도 국민에게 제시된 것은 급조된 국책연구소의 보고서 하나에 불과했다. 이번 협정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자국 법률 개정을 단호히 거부한 미국과 달리 우리는 수십 가지의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마지막으로 성장만이 살 길이라는 정부의 잘못된 발상법에 동의할 수 없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맞고 있다. 정부가 ‘비전 2030’에서 인정했다시피 성장을 통해 고용·분배·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국가전략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대기업 중심의 70년대식 성장 전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혜택을 보는 대상은 거의 수출 대기업들이다. 매출의 80% 이상을 내수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은 입지가 더 좁아지게 된다. 이들의 고용 인력이 1천만명을 넘는다. 자유무역협정은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인 ‘고용 없는 성장’과 ‘사회 양극화’ 문제를 풀 수 없다.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제2의 개항’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이미 큰 폭의 개방이 이뤄졌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개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낡은 경제시스템을 개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적인 성장이 이뤄지면 고용과 양극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부터 버리자. 중소기업을 튼튼히 바로 세우고 내수시장을 키우지 않으면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없다. 국회가 냉정히 판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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