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02 18:19
수정 : 2007.07.02 21:18
사설
보복폭행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화 김승연 회장에게 어제 1심 법원이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앞서 법원이 구속 적부심과 보석 청구를 잇달아 기각해 실형 선고 가능성을 내비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 판결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그동안 재벌 총수들이 피고인이 된 여러 재판에서, 우리 법원이 죄질에 견줘 가벼운 처벌을 해 온 까닭이다. 피해자와 합의한 김 회장으로서는 이번 판결이 가혹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법원 판결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번 사건은 한 재벌 회장이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적 폭행을 가한 것이 핵심이다. 김 회장은 폭력배를 동원해 술집에서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을 한적한 곳으로 끌고가 폭행했다. 더 심각한 것은 사건을 무마하려고 경찰 고위 관계자들을 상대로 로비까지 벌였다는 사실이다. 돈의 힘이면 무엇이든 된다는 식의 이런 행각에 여론의 지탄은 더욱 거셌다. 재판부도 실형 선고 이유로, “피고인이 형사고소 등 상식과 법치주의에 따른 방법을 쓰지 않고 조직적인 사적 보복을 가한 점에서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법원이 형량을 정하면서, 재벌 회장이라는 피고인의 지위를 특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은 의미가 크다. 지난날 법원은 재벌 회장들에 대한 재판에서, 나라경제 발전에 공헌한 점이나 총수가 자리를 비울 경우 경영에 차질이 생긴다는 등의 이유로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을 선고하곤 했다. 이번 판결을 앞두고도 김 회장 변호인단은 김 회장의 구속이 길어지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벌이는 석유사업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며, 나라 경제를 들먹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배척했다. 재벌 총수에 대한 다른 재판에서도 이런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법정 최고형에 크게 못미치는 징역 2년을 구형한 검찰이 오히려 머쓱해졌을 것이다.
경찰청장을 지낸 이가 대기업의 고문이 되어, 자신이 머물렀던 조직에 로비를 하는 현실이 드러나는 등 이번 사건은 낯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 보였다. 검찰은 사건 은폐 및 수사 방해 의혹을 남김없이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을 꾀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김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돼, 한화에 경영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기업주와 기업을 동일시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를 떨쳐 버리고 낡은 지배구조를 고쳐나가는 계기로 삼는다면 한화에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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