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05 18:40
수정 : 2007.07.05 19:26
사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내 대학병원 세 곳이 담배회사의 돈을 받아 담배의 유해성 평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의 몸에 덜 해로운 담배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얻고자 다국적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가 의뢰한 것이라고 한다. 대학병원이 하기에는 연구의 목적도 썩 적절하지 않거니와, 담배회사의 돈을 받아 그런 연구를 하기로 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2005년 세계보건기구의 담배규제 기초협약을 비준하고, 5년 안에 담배의 광고·판촉·후원을 완전히 금지하기로 한 바 있다. 흡연으로 말미암은 사회적 폐해가 커서, 늦게나마 나라가 나서서 흡연을 줄이려 애쓰는 참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학병원이 담배회사의 신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를 돕는 것은 돈벌이에 눈이 멀어 연구윤리를 저버린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서울대병원과 전남대병원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병원 아닌가.
연구가 의뢰자의 이해에 직접 관련돼 있다는 점도 이번 연구를 피했어야 할 이유다. 필립모리스를 비롯한 담배 사업자들은 과거 자신들이 의뢰한 연구에 개입해, 연구 결과를 왜곡했다는 의혹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 때문에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대학들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담배회사가 지원하는 연구비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필립모리스는 이번 연구는 담배의 중독성이나 질병 유발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흡연자의 몸에서 염증, 혈액응고 등 각종 건강지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알아보는 연구인 탓에 담배회사로선 연구 결과에 개입하고픈 유혹을 느낄 듯하다. 대학병원들로선 떳떳한 연구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고 자신하더라도, 그런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대학병원의 신뢰에 금이 가게 하는 일이다.
애초 임상시험에 함께 참가할 예정이던 경북대병원에선 ‘담배회사가 의뢰한 연구’라는 이유로 연구윤리심의위원회가 재심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연구용역을 승인한 대학병원들의 연구윤리 심의기준에 문제가 있거나, 심의과정이 사려깊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교수들이 지난해 10월 담배회사의 연구비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담배회사의 연구비는 학문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한 말을 연구자들은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이번 일을 연구윤리 심의기준을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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