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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06 18:02 수정 : 2007.07.06 19:02

사설

행정자치부가 어제 기존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약간 바꾼 수정안을 발표했다. 독재 시절에나 어울릴 만한 맹세를 강요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검토위원회를 꾸려 만들어낸 것이다. 위원회의 기본 방침이 될수록 문구를 많이 고치지 않는다는 것이어서, 현재의 맹세와 별 차이가 없다. 시대 변화를 고려했다고 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수정안은 기존의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를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로 바꾸고, 기존 맹세의 ‘몸과 마음을 바쳐’를 삭제하는 데 그쳤다. 행자부는 헌법 전문에 담긴 ‘자유’와 ‘정의’를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보고 수정안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구로 보면, 대한민국이 자유롭고 정의롭다고 묘사한 쪽에 가깝고, 맹세가 정작 추구하는 바는 ‘무궁한 영광’이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 어울릴 설명이다.

이런 수정안이 만들어진 것은 검토위원회의 한계 탓인 듯하다. 검토위원회는 ‘현재의 맹세문을 많은 국민이 알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수정을 최소로 했다고 한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이 만든 맹세를 35년 만에 재검토하면서 내세운 이유 치고는 군색하다.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모든 독재의 잔재를 적극 청산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다. 검토위원회가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인식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근본적으로 볼 때, 모든 국민에게 국가에 충성하겠다는 맹세를 강요하는 것은 양심을 침해하는 행위다. 또 집단 최면 같은 맹세로 애국심을 고취시키자는 생각은 폭력적이거나 배타적인 국가주의를 부를 위험이 높다. 애국심이나 충성은 진심으로 우러날 때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맹세를 유지하겠다면, 적어도 보편적인 가치를 표현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한국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가치는 헌법 전문에 훌륭히 요약되어 있다. 전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면서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모든 법 위에 있는 헌법에 한참 못미치는 맹세를 온국민에게 강요하는 건 사려깊지 못하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전면 재검토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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