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26 19:01
수정 : 2007.07.26 19:01
사설
올해 들어 한국영화는 기를 펴지 못했다. 솔직히 극장가에 명함을 내밀기도 민망했다. 할리우드 대형 영화의 잇따른 공세 탓도 있었지만, 예술적 혹은 오락적 만족감을 줄 만한 작품이 드물었던 탓이다. 그런 한국영화의 구겨진 자존심을 엊그제 개봉한 ‘화려한 휴가’가 조금은 펴줬다. 외국영화에 빼앗긴 예매점유율 1위를 13주 만에 되찾은 것이다.
물론 예매율이 흥행을 보증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개봉 첫날 490관에서 12만6천여명이 관람했고, 26일부터는 520관으로 늘고, 또 주말을 남겨뒀기에 개봉 첫주 한국영화 흥행기록(‘그 놈 목소리’ 140만명)을 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들이 기대를 품게 한다. 무엇보다 관객의 반응이 좋다. 의도적으로 제기하는 정치적 논란도 더러 있고, 완성도를 따지는 지적도 있지만, 대체로 관객은 뜨거운 눈물로 27년 전 광주의 아픔에 공감했고, 감동을 표시했다.
그런 점에서 ‘화려한 휴가’는 위기의 한국영화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내부적 요인에서 비롯된 바 컸다. 어제 이례적으로 영화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위기극복을 위한 대타협 선언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제작비와 낮은 작품성이다. ‘화려한 휴가’도 100억원 이상이 투입된 대작이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 비용은 역사적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한 세트 제작과 인력 동원에 투입됐다. 배우 개런티나 기획·홍보비는 실비에 가까웠다. 게다가 대작은 흥행을 위해 대중성 확보에 치중하지만, 이 영화는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극적 감동과 대중성을 함께 추구했다.
사실 5·18은 작가라면 다뤄볼 만한 주제지만, 누구도 쉽게 손대기 힘든 소재다. 가해자 혹은 방관자는 지금도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 피해자는 여전히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정치적으로 휘발성이 높기에 성공보다는 실패 위험이 더 높다. 그러나 ‘화려한 휴가’ 제작진은 정면에서 다뤘고, 역사적 비극의 한 단면을 극적 감동과 함께 전하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잊혀져가는 역사를 되살려냈다. 5·18은 지금도 우리 삶을 규정한다.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될 수도 있는 비극이다. 그러나 20~30대에게조차 이미 잊혀져 가는 역사다. 그것을 삶속에 뚜렷이 복원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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