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31 18:34
수정 : 2007.07.31 18:34
사설
더는 무고한 인질의 희생이 없기를 바라던 간절한 기대가 무너졌다. 아프가니스탄의 반정부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 중 심성민씨를 살해했다. 지난 25일 배형규 목사에 이어 두번째 희생자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짓눌릴 가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
탈레반의 잇따른 인질 살해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만행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유로 죄 없는 민간인을 납치한 뒤 요구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차례로 살해하는 야만적인 행위에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더구나 납치된 한국인들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프간 사람들을 도우러 간 젊은이들이다.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흥정거리로 삼아 희생시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다.
그동안 인류는 여러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전쟁 당사자 사이에도 서로 포로를 존중하는 약속을 만들 정도로 문명의 진전을 이뤘다. 인간 생명은 인종, 종교, 이념에 관계없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이슬람주의에 충실하다면 인류의 보편적인 이성을 존중해야 한다. 이슬람 정신의 핵심은 관용과 평화 아닌가. 탈레반은 인질들을 추가로 살해하겠다는 협박을 즉각 거두고, 나머지 한국인 21명을 가족들의 품으로 하루빨리 돌려보내기 바란다.
탈레반의 두번째 인질 살해로 아프간 납치 사태는 새 국면을 맞았다. 탈레반의 태도로 볼 때 자칫 희생자가 잇따라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냉정하면서도 분명한 대책이 필요하다. 사건 발생 후 인질 구출을 위해 정부가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프간 정부를 통한 간접적인 해결 방식만으로는 별 성과가 없다는 게 드러났다. 일차적으로 아프간 정부가 한국인 인질석방에 얼마나 적극성을 띠고 있는지 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특히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아프간 정부 협상단은 탈레반 쪽과 제대로 접촉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인질이 붙잡혀 있는 가즈니의 주지사가 심씨가 살해되기 직전에 협상 시한이 이틀 연장됐다고 말한 것도 이들의 협상력에 의문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결국 사건의 열쇠를 쥔 쪽은 미국이다. 탈레반이 요구하는 수감자의 석방은 미국의 동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협상과정에서 확인된 셈이다. 테러 세력과는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일반적인 국제 원칙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21명의 무고한 생명을 안전하게 구하는 것이 일반적 국제원칙보다 우선한다. 미국이 우방국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도외시한 채 국제정치적 명분만 내세운다면 우리로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가 자국민도 보호하지 못하면서 아프간과 이라크, 그리고 레바논 등 분쟁지역에 군대를 보내야 하느냐는 질문 말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국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에 협력해 온 점을 고려해 이번 인질 사태 해결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