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남북 당국이 어제 동시에 발표했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7년2개월여 만에 2차 회담이 열리는 셈이다. 회담 개최를 적극 환영하며, 한반도와 관련된 여러 현안을 진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회담은 북쪽 핵문제 해결 노력이 조금씩 성과를 내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지역질서를 모색하는 가운데 열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북쪽이 이번 회담에 합의한 데도 이런 질서 재편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의 이런 노력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넘어서 경제통합과 평화통일의 길을 닦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권력 집중도가 높은 북한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남북 정상회담은 필수적이다. 내실 있는 회담 돼야 이번 회담이 내실 있는 성과물을 만들어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회담 의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크게 세 갈래가 될 것으로 정부 안팎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첫째는 북한 핵문제다. 6자 회담 2·13 합의에 따라 북한 핵시설 불능화 논의가 시작됐으나 참가국들 안에서는 북한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이 여전히 적지 않다. 이번 정상회담은 핵 포기라는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확인함으로써 6자 회담 논의를 활성화하는 동력이 돼야 한다. 둘째는 남북 관계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일이다. 한 세기 전 구한말이나 광복 직후처럼 한반도·동북아 질서가 새롭게 짜이는 시기에 남북이 핵심 주체로 자리잡으려면 양쪽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간 남북 관계는 경협과 인도적 사업, 민간 교류를 중심으로 양적으로 크게 팽창했으나 질적으로는 개성공단 사업을 정점으로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 남북 모두 이제까지의 교류·협력 방식에서 벗어나 한반도 경제권을 염두에 둔 중장기적인 새 구도를 모색해야 할 때다. 정상회담은 이를 위한 산파 구실을 해야 한다. 더 중요한 의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기본틀을 짜는 것이다. 평화체제 논의는 6자 회담 ‘북-미 관계 정상화’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실무그룹에서도 상당 부분 이뤄지겠지만, 전체 틀을 만들고 논의 기조와 속도를 조절할 책임은 어디까지나 남북에 있다. 게다가 군비통제 등 남북이 직접 관련된 여러 군사·정치 사안은 당사자인 남북만이 다룰 수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정치 사안 논의 진전을 위한 기본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의 앞단계로 평화선언을 채택함으로써 평화체제로 가는 주춧돌을 놓기를 바란다.초당적 협력 얻기 위한 노력을 정부는 지난번 정상회담 때의 대북 비밀송금 파문을 의식해서인지 이번 회담의 개최 합의 과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회담 개최 시기도 핵문제 진전 상황과 한반도 관련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적절하다는 평가가 많다. 대통령 선거를 넉 달 앞둔 시점이라고는 하나 선거를 이유로 국가적 과제를 미룰 수는 없다. 그런데도 회담 개최 발표 직후 한나라당이 부정적 논평을 내는 등 노골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낸 것은 집권을 바라보는 원내 제1당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정부 또한 이번 회담이 초당적 협력 아래 민족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노 대통령이 각 당 지도부를 직접 만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의 장소가 다시 평양으로 잡힌 것은 유감이다. 북쪽의 뜻을 고려했다고는 하나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폐쇄적이지는 않다. 노 대통령 자신이 밝혔듯이, 남북 정상이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최대한의 성과를 내고 회담을 정례화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의무다. 다음 정권에도 좋은 유산이 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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