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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정착의 주역이 돼야 |
참여정부 대외정책의 기조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월 말 취임 두 돌을 맞아 행한 국정연설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동북아시아의 ‘균형자’ 구실이 국가정책의 다방면으로 확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우리 군대의 구실에 대해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로서 균형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더니 지난달 22일 3사 졸업식에서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동북아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호기롭게 얘기했다. 비슷한 시기에 외교·통일 정책의 고위 책임자들이 같은 맥락의 발언을 쏟아내고 어제는 한-미-일 3각동맹은 없다는 당국자의 배경설명이 이어졌다.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 당국자들이 거의 한목소리로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 균형자론으로 상징되는 ‘자주외교’ 노선 표명은 국민의 감상적 정서를 잠시 자극하기 위한 즉흥적 산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국자들이 현재의 정세를 놓고 나름으로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19세기 말부터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핍박당했고 해방 이후에도 자주외교가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독자노선이란 것이 어느날 갑자기 선언을 한다고 해서 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노무현 독트린으로 일컬을 수도 있는 참여정부의 새로운 대외정책이 뿌리 내리게 하려면 현실을 토대로 한 냉철한 분석과 대담한 발상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보수진영의 비판은 물리적 힘과 사활적 이해관계에 근거할 수밖에 없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직접적 영향 아래 있는 한국이 미국을 맹주로 하는 진영에서 나와 독자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논리가 오히려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그 이유는 냉전질서의 해체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동북아에서 새로운 국제협력 질서가 아직 확립되지 못한데다, 초강대국 미국의 우월적 지위에 더해 일본과 중국의 패권주의·민족주의적 대립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 사이의 치열한 이해대립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무엇보다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확보하고 주변지역의 분쟁 발생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립하는 어느 진영의 한쪽에 안주해 있으면서 중재를 하고 균형추의 구실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참여정부가 동북아의 판도를 우리 의사에 따라 끌고갈 수 있다는 자만감을 비치는 한편으로 한-미 동맹의 강화를 더욱 강조하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자의적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선의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듯하다. 또한 미국의 심기를 노골적으로 건드려 득이 될 것 없다는 계산도 엿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동아시아를 관리하는 데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을 더 중시하는지는 새삼스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의 협조관계를 유럽에서 미-영 동맹 수준으로 끌고가려는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태도는 명확하다.
이런 현실에서 참여정부가 강대국들의 일방적 정책 결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독자적 활동반경을 확보해 나가겠다면 구체적 복안의 윤곽이라도 제시해야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근세사에서 주변 나라를 침범한 적이 없는 평화애호 겨레라거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들었으니 국력에 자신이 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위력을 갖춘 군사력의 증강을 강조하는 것도 이 지역의 군비경쟁을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이 문제는 정부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고 학계 등을 포함한 시민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논의할 대상이다. 대외정책의 진로와 구체적 방안에 대해 다수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우리는 이 지역의 균형자가 아니라 평화 정착과 번영의 주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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