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8.13 18:51
수정 : 2007.08.13 18:51
사설
그제 봉황대기 고교야구 대회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기록이 나왔다. 전주고 장우람 투수가 이틀 동안 이어진 경기에서 18이닝 완봉승을 거둔 것이다. 던진 공만 자그마치 214개다. 상대팀인 상원고의 김민석 투수도 11⅓이닝 동안 무려 164개를 던졌다. 두 선수는 한국 고교야구의 안타까운 현실을 몸으로 보여줬다. 원인이 어디 있든, 어린 학생들을 이렇게 혹사시킨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경기는 연장 18회까지 간 예외적인 경우지만, 고교에서 투수 한두 명으로 1년 내내 수많은 대회를 치르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재정적 여력이 없는 학교들, 특히 지방 학교들은 투수를 여러 명이나 확보할 엄두를 못 내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의 관심이 프로야구로 쏠리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고교야구 선수들을 혹사시키는 또다른 구조적인 요인은 대학 입시제도다. 대부분의 대학이 전국 대회에서 일정한 성적을 거둔 팀 선수들만 특기자 입학 지원 자격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팀이 전국 대회 승리를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게 되고, 이 와중에 주전 투수는 자의반, 타의반의 희생을 피할 수 없다. 여기에 감독, 학교, 학부형, 동문들의 승부욕까지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선수들의 상황을 더 나쁘게 몰아간다.
이렇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해법도 간단하지는 않다. 한 투수의 투구 수를 엄격히 제한하면, 형편이 어려운 학교들은 만년 하위를 맴돌거나 아예 팀을 해체할 수도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 이야기다. 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선수 혹사를 방치할 수는 없다. 적어도 그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정도로는 투구 수를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여건을 고려해 차츰 투구 수 상한선을 낮춰가야 할 것이다.
프로야구계의 지원도 중요하다. 고교야구가 무너지면 프로야구도 발전할 수 없다. 대학들도 고교야구의 성적 집착을 재촉하는 입시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팀 성적과 무관하게 성장 잠재력을 지닌 학생을 발굴해 키우는 건, 최고 교육기관인 대학의 몫이기도 하다. 고교야구 관계자들 또한 남 탓만 할 일은 아니다. 학업마저 뒷전으로 미루고 오직 승리를 위해 학생들을 혹사하는 풍토를 바꿀 첫번째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 그제와 같은 부끄러운 ‘대기록’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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