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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14 18:12 수정 : 2007.08.14 18:12

사설

광복 예순두 돌이라지만, 우리에겐 옹이처럼 박혀 있는 병탄의 상처가 남아 있다.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51번지 조선인 마을이나 도쿄도 에다가와의 민족학교가 대표적인 사례다. 에다가와는 194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도쿄 주변에서 조선인들이 강제로 이주당한 곳이며, 우토로는 1941년 일제가 교토비행장을 건설하면서 강제징용한 조선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이다. 지금도 차별과 빈곤이 계속되는 곳이다.

60년 동안 민족교육을 벌여 온 에다가와 민족학교는 토지 소유자인 도쿄도의 압력으로 폐교될 뻔했다. 다행히 재일동포 사회의 지원과 양심적 일본인들의 연대, 그리고 국내 모금과 지원으로, 최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에 반해 마지막 강제징용 조선인 마을인 우토로 51번지는 여전히 강제철거의 족쇄에 묶여 있다. 토지 소유자가 요구하는 땅값 53억원은, 지난 60여년 동안 날품팔이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강제징용 조선인들에겐 너무나 크다. 주민은 65가구 203명. 차별과 빈곤 속에서도 일본 국적 취득을 거부하며 마을을 지킨 이들이다. 민족 수난의 살아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나라 안팎의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모은 돈은 18억여원. 시민사회로선 할 만큼 했다. 이에 반해 정부는 뒷전에서 눈치만 봤다. 최근에야 청와대가 해결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의지만 있다면 방법을 못 찾을 리 없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외교적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조선인을 강제징용했고, 전후 아무런 배상도 없이 방치했던 건 일본 정부다. 2005년 유엔인권위원회의 우토로 조사단은 이렇게 평가했다.

“우토로는 2차 세계대전에 동원된 사람들이 그대로 방치된 곳으로,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차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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