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8.22 19:33
수정 : 2007.08.22 19:33
사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그제 “당의 입장은 가능하면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차기 정권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뽑힌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도 “북한 핵이 있는 상태에서 회담을 하면 핵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정상회담 연기론 또는 경계론이지만, 이 후보와 한나라당 모두 10월 초 정상회담에 대해 사실상 반대뜻을 분명히한 것이다. 긴 대선후보 경선 과정을 끝내고 ‘이명박 한나라당’이 내놓은 첫 제안이 정상회담 반대라니 한심하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의 색깔과 기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의 측근들은 이를 실용주의적 중도우파 개혁으로 설명한다. 이제까지의 수구보수 이미지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개혁론에 과연 진정성이 담긴 것인지 의심이 간다. 한나라당 수구보수 이미지의 가장 큰 부분은 바로 낡은 대북정책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정상회담을 하면 북한 핵을 인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논리는, 한국은 핵문제 완전 해결 때까지 한반도와 관련된 여러 사안에서 손을 놓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의 발언에는 정상회담이라는 국가적 의제를 대선 유불리라는 정파적 이해로만 재단하는 태도가 짙게 깔렸다. 이는 집권을 꾀하는 정당이 가질 모습이 아니다. 정상회담 결과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이 그 영향을 우려한다면 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리도록 최대한 협력하고 성과를 나눠가지면 된다. 한나라당이 회담 개최에 시비를 거는 만큼 회담의 정치적 의미도 커지기 마련이다. 이는 회담 준비에 해로움을 끼침은 물론 한나라당 자신한테도 부담이 된다.
지금 한반도 관련 정세는 국내 정치일정에 맞춰 대외관계를 바꿔도 좋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 등은 동시에 진행돼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가 이 과정에서 핵심 주체가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남북 정상회담이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국가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칫 구한말이나 해방 직후와 같은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근시안적 태도로 정상회담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