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8.24 19:05
수정 : 2007.08.24 19:05
사설
‘대학의 글로벌화’를 앞세워 대학들이 앞다퉈 영어로 하는 강의를 늘리고 있다. 이런 흐름을 앞장서 이끈 고려대는 올해 1학기 개설 2389과목 가운데 35%에 이르는 850과목을 영어로 강의했다. 고려대는 2012년까지는 영어로 하는 강의를 절반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다른 대학들도 고려대의 뒤를 따라 영어 강의 비율을 계속 높여가고 있다.
학생들에게 영어와 밀접한 전공에서 제대로 공부를 할 기회를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무작정 영어강의를 늘리는 것이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바람직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영어 실력을 더 키울 수는 있을지 모르나, 자칫 전공 학습 효과는 떨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영어교육 현실에서, 정규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마치고 1~2년 대학에 다닌 학생들이 전공 수업을 영어로 듣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대학생들이 같은 과목이라면 영어보다 우리말로 하는 강의를 훨씬 좋아하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국내 대학에 다니는데도 학생들이 먼저 외국 어학연수에 다녀와야 한다면 이는 앞뒤가 바뀐 일이다.
대학들이 영어로 하는 강의를 늘리는 과정을 보면, 바라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고려대는 2003년 한국사까지 영어로 강의를 하려다 반발을 산 바 있다. 어느 대학에서는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공부한 교수에게 영어 강의를 요구한 일도 있다고 한다. 영어권에서 공부한 교수라고 해도 영어로 무리없이 수업을 이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데, 영어로 하는 강의 수를 무조건 늘리고 보자는 식이다.
삶의 무대가 세계로 넓혀지는 시대에 대학이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키우겠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말이 뒤바뀌어선 안 된다. 영어강의는 교수와 학생 두루 영어로 큰 무리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대학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영어에 익숙하게 하려는 것이라면, 영어 강의를 마구 늘리기보다 먼저 어학 교육을 더 충실히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영어강의를 많이 하고,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뛰어난 것만으로 전공학문이나 대학의 경쟁력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영어 능력을 앞세우는 교수 선발과 평가 방식은 자칫 교육의 질을 더 떨어뜨릴 수도 있다. 대학들의 ‘영어 숭배’가 얻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잃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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