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8.29 17:33
수정 : 2007.08.29 17:33
사설
어제 학력·학위 위조와 관련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렸다. 대형 시국사건이 터지면 열리던 회의가 학력 문제로 소집됐으니, 이 문제의 사회적 파장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일반 연구기관이나 기업 등이 종사자의 학위 검증에 나서고, 심지어 결혼 예정자들까지 상대의 학력 검증을 신청할 정도라고 하니, 때늦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회의 결과는 실망스럽기만 하다. 물론 결론을 내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논의의 방향은 학력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쪽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외국 박사학위의 학술진흥재단 신고제를 도입하거나, 대학교육협의회의 학력조회 서비스를 강화하고, 사법기관이 학력 위조사범을 엄벌한다는 것이다. 검증과 처벌이 대책의 핵심이다. 이런 방안이 학력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학력 조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학력 조작은 학벌 숭배 풍조에서 비롯됐다. 제아무리 철저히 검증하고 색출한다고 해도, 학벌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학력 조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검증과 처벌은 사후 약방문이거나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오히려 학력 혹은 학벌의 순혈성을 더 중시하고 높이는 결과를 불러, 학벌사회를 더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른바 일류 대학의 간판 값은 높아지고, 학력 카르텔은 더 공고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비록 어렵고 더디더라도, 문제의 근본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리던 시간, 광화문 정부청사 밖에서는 학벌 없는 사회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학력 위조 조장하는 학벌사회 타파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학력·학벌 차별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근본적인 해법은 어쩌면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국적은 바뀌어도 학적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결혼·입사·승진·급여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일부 대기업은 대학별로 서열을 매겨, 출신 학교 이름만 가지고 최고 50점 이상의 점수를 더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검증과 처벌만으로 학력 위조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유치하다. 정부는 대학 서열화를 해체하고, 차별 금지를 제도화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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