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02 18:18
수정 : 2007.09.02 18:18
사설
한국 경제는 재벌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2007년 대규모 기업집단 소유지분구조에 대한 정보공개’ 자료는 이런 근본적 의문을 다시금 던지게 한다.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참여정부에서도 재벌 지배구조 개선 노력은 결국 무위로 끝난 듯하다.
공정위 자료를 보면, 총수가 있는 상호출자제한 대상 기업집단 43곳의 총수 일가 지분은 4.90%로 지난해보다 줄었지만, 계열사나 공익법인 등을 동원한 총수의 지배력은 조금도 줄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좀더 높아졌다. 자산총액이 10조원 이상인 출자총액제한 대상 기업집단은 더 심하다. 총수 일가의 지분은 3.45%에 불과하다. 거대 재벌인 삼성은 총수 일가 지분이 0.81%, 에스케이는 1.50%에 그친다. 이런 수치만 보면 결코 총수의 기업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이들은 황제적 지위를 누린다. 심지어 재벌 계열사 중 60% 가량은 총수 일가의 지분이 전혀 없다.
물론 재벌의 이런 모습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재벌가의 불법·편법 경영권 세습, 재벌 횡포 탓에 새로운 기업이 쉬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풍토 등 그릇된 재벌 소유지배구조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폐해를 굳이 다시 열거할 것도 없다. 중요한 건 조금이나마 재벌의 소유지배구조가 개선되고 있느냐인데, 그렇지 못한 게 더 큰 문제다.
더욱 걱정스러운 건 친재벌적 기류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재벌의 무한 확장을 그나마 억제하던 금융-산업 분리 원칙이나 출자총액제한 등 핵심 재벌정책조차 형해화할지 모를 처지에 놓여 있다. 14개 재벌 29개 금융·보험사가 86개 계열회사에 1조7567억원을 출자하고 있는 등 지금도 재벌은 금융계열사에 맡겨진 고객 돈을 쌈짓돈처럼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쓰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물론 정부 안에서도 금산 분리나 출자총액제한 폐지를 공공연히 들먹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국회에는 금산 분리 원칙을 폐지하자는 3개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있고,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금산 분리의 단계적 완화를 정책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대로 가면 다음 정권 무렵에는 ‘삼성은행’이 탄생하고 다른 재벌들도 은행권에 진출하면서, 한국 경제가 산업과 금융을 함께 장악한 재벌에 의해 명운이 좌우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무엇이 한국 경제가 지속할 수 있는 길인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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