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05 18:49
수정 : 2007.09.05 18:49
사설
필리핀에 있는 우리 기업에서 일하던 현지 노동자 두 사람이 최근 우리나라에 왔다. 기업주의 부당 노동행위를 막아달라고 우리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한 노동자는 노조 설립에 참여했다가 부당해고를 당했고, 다른 노동자는 회사가 노조설립에 맞서 폐업을 해 버려 일자리를 잃었다. 한 회사에선 농성하던 여성 노동자 두 명이 차에 실려 고속도로에 내쳐진 일도 있다고 한다.
수십년 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던 노동탄압이 외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니 부끄럽다. 경제 발전이 더딘 나라의 노동자도 기본권은 똑같이 갖고 있다. 이를 망각한 일부 기업인의 행태는, 자신뿐 아니라 많은 국외 진출 한국기업에 나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필리핀에서만이 아니다. 여러 나라에 진출한 우리 기업 가운데 아직도 전근대적인 노무관리의 틀을 벗지 못한 곳이 적지 않다고 인권단체들은 지적한다. 단결권 등 노동자의 기본권을 무시하기 일쑤고, 심지어는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도 있다. 노무관리가 군사적이라는 평가도 흔히 듣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흔히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다. 이 기구의 ‘국제투자 및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은 우리나라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은 외국에 둔 자회사나 지사에서도 우리나라의 관련 법령을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우리 정부에 도움을 요청한 근거도 이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이 권고 사항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얼버무리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필리핀 노동부와 노동법원은 이들의 노동조합 결성이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판정했지만 해당 기업은 1년이 넘도록 단체협상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들이 우리나라까지 찾아왔겠는가?
일부 외국 진출 기업인의 잘못된 행태는 우리나라의 이미지도 나쁘게 한다. 그들의 작은 탐욕을 방치했다가 훨씬 많은 것을 잃게 될 수 있다. 심하면 외교적 갈등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외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노동자 인권침해 실태를 파악해 시정하려는 노력을 적극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문제 의식을 갖고 현지 공관에 개선을 지시한다면 전혀 해결 못 할 일도 아니다. 보편적인 인권을 무시하고는 이제 어느 나라에서도 사업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외국 진출 기업인들도 이를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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