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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3 19:11 수정 : 2005.04.03 19:11

가는 곳마다 대지에 입을 맞추며 사랑과 화해의 ‘말씀’을 전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신이 모시던 신의 곁으로 떠났다. 많은 이들이 지금 그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고 있다. 교황으로 26년을 재임하는 동안 그는 실로 맺혔던 많은 것을 풀어주었고, 막혔던 여러 길을 열어놓았다. 가톨릭 교도가 아닌 이들도 한없이 따뜻했던 그의 웃음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인권 신장을 위해 일관되게 애써온 종교지도자였다. 1984년 그가 우리나라를 처음 찾았을 때, 학살의 핏기가 채 가지지 않은 광주를 방문해 그 상처를 어루만져준 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것은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간접지원이었다. 그는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지지했고, 옛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추진한 개혁과 개방을 지원하기도 했다.

가톨릭 교회가 걸어온 잘못된 길에 대해 용기있는 반성을 이끌어 낸 것도 그의 업적이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과 종교 재판, 2차대전 중 나치 세력에 저항하지 못한 교회의 소극적 행동에 대해 그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비록 그가 피임과 낙태, 여성의 성직 진출에 반대하는 등 교회의 보수적인 전통을 지켜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이슬람·유대·동방정교와 화해를 시도하고 불교와 우호를 쌓은 것도 역사에 남을 것이다.

오늘날 그가 가톨릭을 넘어 모든 종교의 지도자로 추앙받는 것은 고난받는 이들을 향한 깊은 사랑을 몸으로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나치의 폭정을 겪은 폴란드 출신으로, 아마추어 연극인과 채석장 노동자로 어려운 청년기를 보냈다. 이런 경험을 체화해 교황이 되어서도 늘 고난받는 이들의 편에 서려고 애썼다. 서구 사회에 팽배한 물질주의와 가혹한 세계화에 대해서도 그는 강력하게 경고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교회의 참된 존재의미를 일깨웠다.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가 남긴 사랑과 화해의 정신을 깊이 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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